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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림책미인 앨리 Nov 20. 2022

아이가 다치면 엄마는 죄인

< 공감 에세이 >

늘 밝게 웃으며 들어오던 아이가 낯빛이 어두웠다.

"엄마, 죄송해요. 버스에서 내리다가 다리를 접질렸어요."

순간 또 병원 갈 것을 생각하니 머리가 아파졌다.

절뚝거리는 모습에 날카로운 송곳에 찔린듯한 느낌을 받았다.

발목을 한 번씩 접질려 한의원에서 침 치료를 받았다. 

나처럼 발목을 자주 접질린 것 같아 속상했다. 이것도 닮는 건가. 유전인가 하며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일요일 아침, 내일 등교하기에 불편한 것 같아 오늘 병원 하는 곳이 있으며 가보려 했다.

내일 가도 괜찮지 않냐는 남편 말에 그럴까 고민하던 중 남편이 아이를 불렀다.

발이 어떻게 아픈지 물어보며 서 보라고 했다.

순간 균형 있게 서 있지 못하는 아이 뒷모습에 눈이 커졌다.

"여보, 이리 와보세요."

깜짝 놀라 후다닥 가보니 일자로 서 있어야 할 발 한쪽이 안쪽으로 치우쳐져 있었다.

무슨 큰일이 생긴 건 아닐까라는 생각에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육안으로 본모습과 사진상 모습이 일치하지 않았다.

눈으로 보았을 때는 분명 불균형 있게 서 있는 모습이 사진 속에서는 정상으로 보였다.

잠깐 동안 침묵이 흐르고 내일 병원 가보라던 남편은 이리저리 전화하기 시작했다.

난 나대로 불안이 엄습해 걱정이 되었다.

한참 크는 시기에 잘 못 되어 성장판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닌지 두려움이 다가왔다.

다행히 병원 한 곳에서 진료 가능하다는 말에 부리나케 준비하였다.


© Taokinesis, 출처 Pixabay


차는 병원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지만 내 마음은 벌써 병원 도착해 부정적인 결과에 망연자실하는 표정까지 상상하고 있었다. 머리를 크게 흔들며 부정적인 마음이 뇌에 큰 영향을 준다는 말이 번쩍 떠올라 빨리 별일 아니라고 스스로 주문을 걸었다. 남편이 주차하는 동안 마감 시간 안에 접수를 끝내야 했기에 총총 걸어갔다. 로비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고 접수하는 동안 안내인은 담당 의사가 한 분이라 시간이 좀 걸린다고 했다. 면접 시간을 기다리는 것처럼 초조한 마음이 계속 나를 누르고 있었다. 

딱히 할 것도 없어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보았지만 집중되지는 않았다.

일요일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다쳐 병원에 있는 게 그저 신기하였다.

다른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왔는지 듣고 싶지 않아도 들렸다. 입원하라는 어떤 분은 일 때문에 당장 못한다는 안타까운 사연, 지금 치료하지 않으면 영영 다리는 쓰지 못한다며 협박하는 어느 부모 등 웃음이라고는 찾을 수 없는 공간이었다. '잉? 모두 다리를 다쳤네.' 우연의 일치인지 대부분 사람들이 다리 때문에 병원을 찾아왔다.

" 000 들어오세요."

간호사가 안내하는 밝은 방으로 들어가며 긴장감은 계속 되풀이되었다.

아이가 앉고 의사는 다치 왼쪽 다리를 구석구석 만져보았다. 아킬레스건 뒤쪽을 누르니 "아!" 하며 아이는 짧은 고함질렀다. 

"아킬레스 건염입니다." 

"혹시, 어제보다 아픈가요? 아니면 걸으려고 할 때 많이 아픈가요?"

아이는 명확한 대답이 아닌 애매한 대답을 해서 애간장을 태웠지만 의사는 딱 바로 맞추었다.

갑자기 운동량이 많아진 적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어떻게 알았을까.

지난달부터 아이는 학교에서 농구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농구하고 온 날은 항상 피곤해서 바로 자곤 한 기억이 났다. 당분간 운동은 하지 말고 점프하는 행동이 들어가는 운동은 하지 말라고 했다. 특히 줄넘기는 최악이라며 절대 하지 말라고 했다. 또한 많이 서 있거나 걷기, 살찌는 것을 조심하라고 했다.

'아 이제 아이랑 외출하기는 걸렀구나.'라는 생각과 동시에 마음껏 뛰어다니지 못하게 될까 봐 걱정이었다.

정적인 것보다 동적인 것을 좋아하는 아이이기에 잘 지킬지 의문이었다.

엑스레이 검사가 끝나고 다시 진단이 시작되었다.

앞으로 한 달 동안 운동은 하지 말라고 당부하셨다. 이때 잘 쉬어주지 않고 운동을 계속하면 아킬레스건이 파열될 수 있다고 경고하셨다. 아이가 어려 약은 먹지 말고 저절로 나아지도록 하고 2주 후에도 아프면 그때 다시 오라 했다. 아킬레스건 파열이라는 단어에 두려움이 엄습했는지 두려워했다. 

괜찮을 거라 꼭 안아주며 안심시켰다.




집으로 오는 길, 창밖에는 잘 보지도 못했던 이름 없는 낙엽들이 흩날려 바닥을 차지하고 있었다.

괜히 그 낙엽을 보니 나쁜 것은 다 엄마를 닮는 건가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첫아이보다 둘째 아이를 가졌을 때 가려야 하는 음식을 딱히 가리지 않았다.

커피가 무엇보다 마시고 싶었기에 많이 마시지 않는 조건으로 커피를 조금 마셨던 기억이 나고 모유를 일 년 동안 수유한 첫아이 때와는 달리 육 개월만 수유해서 이렇게 아픈 건가라는 생각이 들면서 괜스레 나 때문에 일어난 일처럼 느껴졌다.

'우리 엄마도 내가 아플 때 당신 때문이라는 생각을 했을까?'라는 생각을 하다 보니 눈가가 뜨거워지기 시작했고 눈물은 콧등을 타고 내려왔다. 애써 눈물을 감추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아이가 아프면 엄마는 죄인이 된다.

나 때문에 아이가 아픈 것 같아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든다.

아이가 아프면 '어떻게 했길래, 네가 영양가 있는 음식을 잘 안 먹여서, 네가 부주의해서, 네가 그때 아이 옆에 없어서'라는 말을 종종 들었다. 분명 내가 직접 가해하지도 않았는데도 아이 아픔은 내 잘못인 양 비난을 받았다. 처음에는 화가 났다. 내가 그렇게 되라고 제사 지낸 것도 아닌데, 내가 다치라고 빈 것도 아닌데 왜 나한테 모든 걸 원인 제공이라고 말하는지 미칠 지경이었다. 하지만 이 말에도 무디게 되면 내가 잘 못한 것도 아닌데 내 탓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농구해도 된다고 허락하지 않았다면 지금 이렇게 아킬레스 건염이 생기지 않았을까. 

매우 어릴 적 여동생이 아빠 일하는 곳 다니다가 기름에 덴 적이 있다.

지금도 그 상처가 아물지 않아 흉터가 그대로 있다. 작은 흉터가 아니라 그 흉터라 엄마, 아빠는 말씀은 안 했지만 언제나 막내를 안쓰러웠다. 그 상처를 볼 때마다 엄마는 미안한 마음이 늘 있다고 하신다. 마음속 깊이 멍든 채로 지워지지 않고 자신을 억누르고 있다고. 우리 가족은 절대 여동생 흉터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눈에 잘 띄는 곳이기에 어릴 때는 아이들이 '괴물'이라고 놀리기도 해 펑펑 울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아이는 다치면서 자란다. 당연히 자라는 과정 중 하나이지만 아이가 다치면 엄마는 늘 죄인처럼 살아간다.

무사히 아킬레스 건염 사라지길 바라며 물끄러미 자는 아이 다리에 얼음주머니를 올려본다.

© polarmermaid,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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