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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림책미인 앨리 Nov 18. 2022

고슴도치 가시

< 공감 에세이 >



어. 어. 어....

휴대폰 들여다보며 길 건너다 넘어졌다. 싱그러운 햇살이 내리쬐는 오월에 주변 광경보다 휴대폰 영상에 빠져 넘어져 팔과 무릎을 다쳤다. 

넘어지면 아픈 것보다 주위에 누구 있지 않은지 아픈 고통을 참으며 두리번거리기가 바빴다.

왼쪽 무릎의 따끈 거림은 그야말로 정신 차리게 만들었다.  바지를 걷어 올리니 무릎 다친 쪽을 다시 다쳐 봇물 터지 듯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때 팔도 욱신 걸렸지만 시간이 지나면 괜찮을 거란 생각에 병원 가지 않고 그냥 시간을 보냈다.


한 달, 두 달 그리고 여섯 달이 되었다. 무릎은 신기 방통 한 상처 밴드로 깔끔하게 나아졌지만 팔은 여전히 아팠다. 시간이 지나갈수록 팔 통증이 심해졌다.

욱신거리기 시작하더니 팔을 제대로 들어 올릴 수 없었다. 안쪽으로 팔 당기는 동작도 고통이 심해 할 수 없었다. 등 뒤로 손깍지 낀 채로 들어오리는 것도 안 되었다. 심각했다. 하지만 병원에 가지 않았다.

집 앞에 분명 정형외과가 있는데도 결과가 두려워 가지 않았다.

혹시라고 깁스를 해야 한다는 진단이 나오면 일을 전혀 하지 못하기 때문에 가기를 스스로 거부했다.

오른팔이라 더 신경이 쓰였다. 계속 오는 통증에 잠자리도 뒤척거리고 팔을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해 편하게 자지도 못했다. 팔을 위로 올리거나 옆으로 누워 베개를 다리 사이에 끼우며 팔을 베개 밑에 넣어 자는 걸 좋아하는 데 전혀 할 수가 없었다.




병원을 갈까 말까 고민하다 한의원이 생각났다.

발목은 자주 접질려 침 치료하는데 팔도 치료받아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분명히 병원 가면 어떤 상태인지 뻔히 알게 되는데도 침 맞으면 괜찮을 거야 하는 생각으로 성큼 한의원으로 향했다.


열 개 정도의 넓은 계단을 올라가면 길이 갈라진다.

왼쪽과 오른쪽으로 갈 수 있는 갈림길이 나오는데 오른쪽은 일반 병원이고 왼쪽에 한의원이 있다.

좌향좌로 걸음을 옮기며 긴장되는 마음으로 한의원으로 쏙 들어갔다.

한 번씩 오는 한의원이라 이미 간호사와는 안면을 튼 상태다.

오늘도 발목이 아파서 왔느냐는 말에 이제는 팔이라며 호소하고 침구 실로 들어갔다.

무뚝뚝한 간호사 대신 한 텐션 올려 말하는 다른 간호사가 있었다.

밝은 표정으로 최선을 다하는 간호사 행동이 익숙하지 않았지만 무표정보다는 나았다.

발목을 치료할 때는 옷을 환복 할 필요가 없었는데 팔에는 침 치료하다 피가 흐를 수 있어 환복을 권했다.

옷을 갈아입고 딱딱하지만 뜨끈한 침대에 올라가 누웠다.


" 00번 준비되었습니다."

라는 간호사 말에 흰머리가 제법 올라온 한의사가 들어왔다.

"어디가 아프세요?"

"오른팔이요. 6개월 전에 넘어져 다쳤는데 통증이 심해서 왔어요."

"아~ 그래요?" 한의사는 팔을 꾹 눌러보았다.

"앗! 아~" 내 신음 소리에 맞춰 어디가 아픈지 판단하고 침을 놓기 시작했다.

따끔거린 생각이 나며 시선은 천장을 바라보았다.

"치료하고 약침 한 대 더 맞겠습니다."

어느새 내 팔에는 수많은 고슴도치 가시가 솟아져 있었다.

순간 침이 몇 개나 꽂혀있는지 궁금했지만 움직이면 안 된다는 막연한 생각에 얼음처럼 누웠다.


© tinymountain, 출처 Unsplash


약침이 뭐지. 처음 들어 본 침이기도 하고 예전보다 통증이 오래가고 여러 치료를 하고 있는 내가 갑자기 늙어져 버린 기분이 들며 침 뽑을 때까지 기다렸다.

침대가 딱딱해서일까. 누워있는데 몸이 안절부절 가만있지 못했다. 몸 아래에 발 올리는 베개가 있었지만 배기는 느낌이 들어 몸을 최대한 5분 간격으로 움직였다. 불편하게 침 치료 중이라니. 난 왜 이 불편함을 감수하고 침을 맞는 걸까 생각하다 잠시 잠들어버렸다.


침을 뽑는다는 말에 깨어났다. 간호사가 물리치료 15분 하는 것을 오늘 환자분이 별로 없어 30분 해준다고 했다. 횡재한 기분이 들어 15분은 물리치료만, 15분은 물리치료와 찜질을 함께 받았다. 

그런데 이게 화근이었다. 시간이 다 되어 물리치료 기계를 제거했는데 내 팔에 울퉁불퉁 작은 물집이 생겼다. 빨간 작은 물방울이 다양한 크기를 자랑하며 피부를 뚫고 투명하게 올라왔다. 간호사의 당황스러운 낯빛이 보였다. 최대한 아무렇지 않다는 표정을 지으며 처음이라 그러니 양해를 부탁했다.


한의사가 들어오고 "이런!" 짧은소리는 간호사에게 무언의 일침을 보내는 것 같았다.

커든 사이로 간호사와 한의사 말이 오갔다. 예상외오 한의사는 간호사에게 이럴 경우 어떻게 하라고 알려주었다. 부드러우면서 날카로운 일침이었다.

간호사와 이야기를 마친 한의사는 약침을 놓는다고 말하고 실행에 옮겼다. 주사 바늘이라고 생각했는데 침이었고 아까보다 조금 더 날카로움이 느껴졌다.

5분 정도 누워있다 일어나면 된다고 했다. 간호사는 아까 실수를 만해하려고 하는지 묻지도 않은 약침에 대해 상세하게 알려주었다. 본인도 치료받았는데 좋았다고 하며 성분과 효능에 대해 자세히 알려주었다. 난 잠시 쉬고 싶었을 뿐인데 열변을 토하는 간호사에게 차마 그만하라고 말하지 못했다. 


한 마디로 약침은 영양제 주사였다.  

피부가 약해서 물집이 생긴 것 같다며 손대지 말고 그냥 두면 사라진다는 말로 나를 안심시켰다. 나와 친분이 있는 간호사가 면봉으로 바셀린을 살짝 바르면 괜찮다고 귀띔한다.


지금 소매를 올려 내려다보니 내 팔이 흉해졌다. 얼마 전 부황으로 뜬 자리엔 시퍼렇게 멍이 들어있었고 이제는 여기저기 붉은 방울들이 올라와 징그러웠다.

빨리 그 흉한 것들이 사라지기를 바라며 면봉으로 물집이 터지지 않게 바셀린을 발랐다.

전혀 따갑거나 어떤 고통이 동반되지는 않았다.

내일은 이 흉한 자국이 좀 없어져야 할 텐데.

침 치료를 계속해야 할지 병원을 가야 할지 갈등한다.

나도 이제 나이가 든다는 생각에 갑자기 서글퍼졌다.

그나저나 이 욱신거리면서 부자연스러운 팔 움직임은 언제쯤 사라질까.


© tinymountain,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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