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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림책미인 앨리 Dec 23. 2022

도시락

< 공감 에세이 >


지금은 학교에서 먹는 도시락 풍경이 사라졌지만 예전에는 집집마다 도시락 싸는 것이 엄마들의 고역이었다. 물론 즐겁게 준비할 수도 있겠지만 매일매일 두 개씩 사야 할 때 더구나 형제들이 2명 이상이라면 노동이 따로 없다.


설거지를 하다 아이 수저통을 씻다 도시락이 생각났다.

초등학교, 중학교에서 무료 급식이 시작한 뒤로 엄마가 된 난 개인적으로 너무 좋다.

요리를 못하는 이유도 있지만 아침마다 도시락 준비하기에는 '부지런함'이란 단어가 꼭 필요하다.

게으른 나에게는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한 번씩 학교에서 현장체험학습(요즘은 소풍이라는 개념보다 현장체험학습이란 단어를 사용한다.) 갈 때 도시락 준비할 때가 있다. 학교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가는 경우도 있지만 아침 일찍 출발해야 하는 경우에는 도시락 지침이라는 통신문이 온다.

그때부터 어떤 음식을 준비해야 할지 고민한다.

'소풍'이라면 김밥이 떠올릴 만큼 고정적인 메뉴가 생각나지만 아이 의견도 물어봐야 한다.

내가 준비하기 편한 음식보다 아이가 원하는 음식이 먼저라는 생각 하며 이 날 만큼은 아이가 원하는 음식 준비하려 한다. 뭐 '김밥'인기가 여전하지만 가끔은 유부초밥이나 볶음밥을 원할 때도 있다.

현장체험학습 가는 날이 되면 SNS에서는 난리가 난다.

서로 도시락 자랑이 시작된다.

어쩌면 그렇게도 멋지고 예쁘며 아기자기한 모양으로 도시락을 만들까.

손재주가 없는 난 한참이나 화면을 들여다보다 째려본다.

도시락 싸주고 남은 김밥 하나 내 입안으로 넣으면서 말한다.

'맛있으면 된 거 아닌가. 나도 자랑할까? 뭐 그럴 필요하까.'

하며 남은 김밥 흔적을 지운다.




고등학교 시절, 엄마는 새벽마다 분주했다.

전날 늦게까지 장사하시고도 아침에 일찍 일어나셔서 삼 남매 도시락을 준비하셨다.

그때는 고등학교 때 야간 자율학습이 있어(지금도 하는지 모르겠지만) 한 사람당 도시락이 두 개를 준비해야 했다. 중학생 한 명, 고등학생이 두 명이었는지 말은 안 하셔도 아침마다 도시락 전쟁이었다.

오늘처럼 추운 겨울이 오면 더 바빠진다.

금방 지은 뜨근한 쌀밥에 반찬까지 준비해야 하니 다섯 개 도시락을 삼 남매 등교하기 전까지 준비해야 해서 그야말로 전쟁터가 따로 없었다.

엄마에게는 나름 도시락 규칙이 있었다.

밥은 갓 지은 것으로 가득 꾹꾹 눌러 담고 가능하면 단백질 보충을 위한 반찬(달걀, 고기, 생선, 두부 등), 칼슘 보충(멸치), 김치와 가끔은 햄 종류를 번갈아 가며 담아주셨다.

숨 막혔던 고등학교 시절 도시락 먹는 시간이 유일한 휴식시간이었다.

아침에 밥을 먹지 않고 등교했을 땐 쉬는 시간에 허겁지겁 먹는 도시락 맛이 꿀맛이었다.

단, 쉬는 시간에 먹을 때는 창문을 아주 활짝 열고 먹어야 했다.

엄마 사랑과 노고를 생각하며 부지런히 도시락을 먹었다.

하지만 때로는 도시락이 부담스러울 때도 있었다.

앉는 시간이 늘어남에 따라 소화가 되지 않았는데 가득 든 밥을 다 먹어야 할 때다.

남기면 되지 않느냐고 하지만 우리 집에서는 보이지 않는 규칙이었다.

엄마가 얼마나 열심히 사는지 눈으로 직접 보기 때문에 새벽에 준비하는 도시락을 남길 수가 없었다.

한 번은 배가 아파 남겼더니 엄청나게 혼났다.

그리고 원망스러웠던지 서럽게 우는 엄마 모습에 다시는 음식을 남기지 못했다.


가끔 도시락을 나처럼 비우고 가야 했던 아이들은 학교에서 먹다 남은 음식을 버리고 간다.

하지만 음식은 함부로 버리지 말아야 한다는 의식이 강했고, 무엇보다 먹다가 버린 도시락통은 희한하게도 엄마가 정확하게 안다. 그때는 어떻게 알았는지 몰랐지만 세월이 흘러 부모가 되어보니 이해가 갔다.

말로 할 수 없는 도시락의 흔적은 양육자만 할 수 있는 초능력이다.






코로나가 시작되고 사회적 거리가 강해지면서 나들이 생각이 간절할 때 집에서 내 맘대로 도시락을 만든다.

주로 김밥을 만들다 보니 이제는 뚝딱 짧은 시간에 해낸다.

김말이가 없어 울퉁불퉁 내 손길 따라 김밥 마는 모양이 다르지만 맛은 나쁘지 않다.

단무지와 계란, 어묵만으로도 충분히 맛난 김밥으로 탄생할 수 있다.

한참 김밥이 먹고 싶어 일주일에 한 번씩 김밥 도시락 만들어 먹으니 남편이 한 마디 한다.

"김밥 도시락은 특별한 날 먹어야지. 이렇게 자주 하면 아이들이 김밥 먹는 날 의미를 잘 몰라요."

질린다는 말을 이렇게 표현한 걸까.

그 뒤로는 김밥 도시락을 거의 하지 않았다.

귀찮다는 핑계도 있지만 집에 김밥 만들 재료가 없다.


이제는 겨울이라 도시락 만들 경우가 없지만 수저통을 씻다 보니 엄마가 새벽에 일어나 준비한 두 개의 뜨끈한 도시락이 그립다.


겨울비가 내려서일까.

엄마의 사랑이 고파서일까.

보온 도시락이 많이 생각나는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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