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림책미인 앨리 Jan 06. 2023

손뜨개질

< 공감 에세이 >


아침부터 탈의실은 자기 자랑으로 후끈 달아올랐다.

겨울 중에서 가장 춥다는 '소한'추위는 여기서 한 발짝도 들어오지 못할 만큼 뜨거웠다.


짜잔~

모두의 시선이 알록달록 붉은색으로 털실로 짠 모자로 쏠렸다.

방금 막 샤워를 하고 나온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기에 밝은 색상이 눈에 들어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어머라~ 색 참 곱다."

"언니야! 네가 짠 거가? 선물 받은 거가?"

"너무 예쁘다. 너한테 딱 어울리네."

저마다 한 마디씩 한다고 야단이라 단풍잎처럼 물든 털모자를 쓴 주인은 말도 한마디 못 하고 있다.

다 돌아가며 말하고 나서야 겨우 입을 열 수 있었다.


"와? 어울리나? 누가 선물로 해줬다. 얼마나 따신지 모른다. 손바느질해서 선물로 준다 아이가."

말이 끝나게 무섭게 주제는 모자에서 뜨개질, 뜨개질에서 바느질로 옮겨갔다.

자기주장이 강한 한 분이 먼저 입을 열었다.

"내도 바느질 엄청 잘한다. 심심할 때 하면 시간 가는 줄 몰라 재미있다."

"내도 손뜨개 그거 했는데 남편이 하루 종일 그것만 한다고 못하게 하데. 그래서 지금은 안 한다. 눈도 침침해지고 고개도 아프다 아이가."

"내는 바느질은 일체 못한다. 못하는 사람은 그냥 사서 입으면 된다. 뭐 하려고 힘들게 손으로 하노. 시간도 아깝고. 그건 노동이다. 노동."

이에 질세라 바느질하는 것에 찬성하는 분이 한 마디 한다.

"아이고 마. 사는 거라 이렇게 직접 만드는 거라 천지차이다. 내가 직접 바느질해서 누구에게 선물하거나 착용하면 얼마나 뿌듯한데."

"그래도 바느질 못하는 사람은 사는 게 최고다."

오고 가는 자랑 소리에 귀에서 피가 나오려 한다.






손뜨개질로 뜨거운 난로가 되었던 탈의실에서 문득 어릴 적 가게 보면서 아빠 목도리 뜬다며 털실과 실랑이 벌였던 기억이 났다.


난 바느질에 영 소질이 없다. 그래서 학교 다닐 때 가정, 가사 시간에 바느질하는 수업이 제일 싫었다.

집중해서 한다고 하지만 코를 자꾸만 빠뜨리거나 실이 자주 엉켜 푸는 시간만 늘어나 짜증만 났다.

추운 날 털실로 목도리 짜는 모습이 왜 그리 좋아 보였던지 따라 하다가 성질만 더 났다.

겨우 완성해서 아빠에게 줄 목도리를 완성했지만 오래가지는 않았다.

아빠 목에 걸어주고 환하게 웃었던 아빠 표정은 하루면 충분했다.

어디에 걸려서인지 코가 빠져 완성품에서 불 완성품으로 전락해 버렸다.

아빠는 괜찮다면 웃었지만 난 그동안 공들인 시간과 정성이 너무 아까워 울어버렸다.


시간은 흘러 아이를 가지면서 바느질에 다시 도전했다.

뜨개질이 아닌 펠트공예였다.

바느질이 생각보다 쉬울 것 같아 인터넷에서 재료를 구입하고 혼자 독학으로 도전했다.

나름 어렵지 않게 만들어가는데 옆에서 보던 남편이 한 마디 했다.

"음..... 바느질이 비뚤 빼뚤인데. 이리 줘봐. 내가 해볼게."

주사위, 사진첩, 공을 열심히 만든 것을 보던 남편은 낚싯대 만드는 나를 흘깃 보더니 답답했는지 하고 있는 걸 슬며시 가져갔다.

그런데...

어라! 이건 뭐야?

나보다 훨씬 잘하고 있는 것이다. 반듯하게 제대로 반듯하게.

마음이 발라야 바느질 방향도 곧다는 말이 생각났다.

나 안 삐뚤어졌는데. 난 왜 이런 거야.

순간 절망스러웠지만 한편으로는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마침 지겨워지기 시작했기에 넌지시 낚싯대 키트를 남편 쪽으로 밀어 넣었다.

싫어할 줄 알았던 남편이 씩 웃더니 열심히 정성을 다해 교구를 만들었다.

역시 남편도 같이 태교를 해야 하는 거다.


시간이 흐르고 아이들이 태어나면서 교구를 하나둘씩 가지고 놀았다.

실컷 놀던 아이가 나에게 쪼르르 달려오더니

"엄마, 이건 실이 바른데 이건 왜 삐뚤빼뚤 이야

그 말에 박장대소하는 남편을 몰래 째려보았다.

역시 난 바느질 체질은 아니었다.



작가의 이전글 웃고프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