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 선비, 상놈이 되다
이탈리아인들의 가장 큰 특징이 뭘까.
맞춰 보시라....
말이 (더럽게) 많다는 거다!
뭔 할 말이 그렇게 많은지 아니면
정적이 흐르는 그 공기를 참지 못하는 것인지,
무튼 말이 많고,
그래서 그런지 매사에 불평불만도 많다.
다들 투덜이 스머프를 삶아 먹은 가가멜인가 싶다.
하긴, 여기가 짜증 나는 일들이 많기는 하다!
한국에서는 그래도 여자가 말이 없으면 차분하네,
남자가 말이 없으면 진중하네 이런 칭찬을 듣는 반면,
이탈리아에서는 과묵한 사람은 바보 취급을 당한다.
이런 문화 때문에 어려서부터 수다 스킬을 자연스레 습득하는지도 모르겠다.
한마디로, 내가 내 의사을 강력하게 표현하지 않으면
아무도 나를 알아봐 주지도 않고 배려해 주지도 않는다.
굉장히... (체념) 단순한 사람들이라 할 수 있겠다.
여백의 미라든가, 침묵의 가치 따위는 전혀 헤아릴 생각이 없는 사람들이다.
보이는 게 전부다, 처럼.
들리는 게 전부다, 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
내성적이고 말수 적은 나같은 인간은 절대 올 곳이 못 된다!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뭐든지 바로바로 물어야 한다.
점원 등이 귀찮아할까봐 괜히 배려한답시고
몰래하거나 남들 따라했다가는 물어보지도 않고 멋대로 했다고
핀잔을 들을 수도 있다.
가게에 가서도
사든 안 사든 주인과 일단 이야기를 해야 한다. (고통)
“내가 찾는 것은 이런 것이오.
그런데 살지 안 살지 모르겠소.
일단 한번 보러 온 것이오.”
괜히 사지도 않을 건데 나 때문에 다른 손님도 못보고
시간 낭비 할까봐
아무말도 없이 ssg 들어가서 혼자 보고 있으면 아마
“왜 들어와서 아무 것도 안 묻는데?!
왜 들어와서 나랑 눈을 안 마주치는데!!!?
왜 들어와서 예의 없이 나를 투명인간 취급하는데???!!!”
이렇게 생각할 인간들이다...(고통x2)
아마 눈짓이란 걸 모르는 것 같다.
예를들어,
슈퍼에 갔는데,
앞 사람 카트에서 물건이 하나 빠졌다고 하자.
내가 주워다가
눈짓으로
댁이 방금 떨어뜨렸소.
했다가는 도둑 취급 당할지도 모른다!
정답은
일단 떨어진 물건은 절대 줍지 않는다.
무엇보다 내 것이 아니니까.
괜히 만졌다가 무슨 봉변이나 사기를 당할지 모르니까.
먼저 입을 열고 말을 걸어야 한다.(고통)
“여기 보시오. 오늘 파티가 있나 보오?
물건을 많이 샀구료.
그런데 우연히 댁의 물건이 떨어진 걸 보았소.
저기 바닥을 보시오. 당신 것이오?
저것 때문에 오늘 슈퍼에 다시 사러 올 뻔 했잖소! 허허.”
“아이고, 감사합니다. 그러게 말이죠. 우리집이 여기서 차 타고 10분이나 걸리는데, 그 두오모 광장 뒷길에서 좁은 골목 끝, 거기 사는데, 얼마나 주차가 불편한지.”
“그렇소? 그 뒷쪽 빵집 뒤에 가면 항상 주차 자리가 있던데, 그 빵집 주인 아들이 이번에 음주 운전해서 차를 팔아버려서.....
이렇게 슈퍼 한 복판에서 생판 모르는 인간들이 한 20분 이야기하고 또 아무일 없었던 것처럼 각자 장보러 가는 것이 이상하지 않는 곳이 바로 이탈리아이다.
(나랑은 안 맞아...)
아이들때부터, 약한 사람을 도와주고 돌봐야 한다고 배우기 보다, 내 의사 표현을 해야 한다는 것을 더 강하게 배우는 것 같다.
소심한 친구를 일부러 끼워주고 이런 것 절대 없다.
어릴 때부터 야생인 거다.
같이 놀고 싶으면 머리를 들어밀어야 한다.
한국에서는 외국인이면 응당 한국어를 못하겠지,
느리게 말해도 다 들어주고,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일부러 초대해 주고 그러지만,
여기서는 그런 거 없다.
이태리말 문법 틀려도 상관 없으니까
무조건 빨리 치고 말해야 한다.
그렇게 스스로 비집고 들어가야 한다.
아마 그래서
보통 소심하고 내성적인 이태리인들이 그렇게 한국 가서 살고 싶어하고
한국에서 외향적인 사람들이 이태리를 오고 싶어 하나 보다.
배려? 그게 뭔가요?
물론 법적인 보행자 배려라든지,
유럽식 구식 문화인 레이디 퍼스트 라든지
(물론 여기서도 늙은 남자들만 이런 걸 따지지
젊은이들은 그런 거 없고, 진부하게 생각한다.
사실 어떻게 보면 레이디 퍼스트 자체가 여자 차별이니까),
장애우 배려(특별한 배려는 아니고, 쳐다보지 않는 것. 이런 것은 나름 어울리지 않게 선진스럽다. 그럼에도 동양인은 왜 뚫어지게 쳐다보는지... 아, 이걸 보면 그래, 여기가 바로 이탈리아지 싶다)는 존재한다.
그러면서 또,
버스나 기차에서는 본인들 안방처럼 우렁차게 통화한다.
나 같으면 남들이 내 통화 듣는 게 싫어서라도
나가서 통화할텐데,
다들 뭐 거기서 10억 쏴서 20억을 내일 받아서!
뭐 이런 식이다.
사회 문화적인 배려는 우리와는 좀 다른 개념이라고나 할까.
예를 들어 반 애들과 모여 얘기하다가
한 친구가 옷에 물을 쏟았다고 치자.
한국에서는 괜히 그 친구 민망할까봐, 괜히 농담도 하고 웃고, 또,
리액션 좋은 한국인들,
어머나! 헐! 어떻게 해! 악!
난리가 나고
다들 그 친구한테 집중해서
서로 휴지 꺼내고 괜찮냐고 복작복작 난리일 거다.
그런데,
이태리 사람들은 그런 집중을 정말 부담스러워하고,
특히나 본인이 실수했을 때 주목 받는 것을 놀림 받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남이 실수하면 큰 일이 아니면 보통 아예 못 본 체, 본인이 알아서 수습하게 그냥 내버려 둔다.
또 주변에서 너무 챙겨주면, 자기를 애로 보는 건 아닌지 기분 나빠할 수도 있다.
그래서 이탈리아에서는
아마 그 친구가 물을 쏟았어도 별 일 아니면 그냥
사람들은 하던 얘기 자기들끼리 할 거고,
쏟은 친구는 알아서 화장실로 튀어가 수습하고
아무렇지 않게 올 것이다.
물론 한 명 쯤 휴지 있니? 물어 볼 수는 있고.
하지만, 아무도 친구가 멋쩍어 할까봐
괜히 웃거나
쓸데없이, 너 그럴 줄 알았다는 둥,
티가 젖으니까 섹시하다는 둥 이런 농담을 하지도 않을 거다. 그 친구를 놀리는 것처럼 보일테니까.
배려가 이렇게나 다르다!
한국에서 선비가 이탈리아에는 상놈이 될 수도 있다!
바꿔말하면,
한국의 상놈이 이탈리아에서 선비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