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끝
프리울라노: 북부 이탈리아의 화이트 와인. 쓴 맛의 아몬드 노트가 특징.
by 일이삼사오육칠팔구 Aug 11. 2019
동그랗게 말아서 어두운 구석에 가만히 나를 놓이고 싶었다.
"Come stai?(꼬메 스따이?: 이탈리아어로 '잘 지내?')"
나는 아직도 그가 정기적으로 보내는 이 문자의 의미를 알 수가 없다.
2년 전 베네치에서 혼자 이틀 밤을 잘 때도 그는 이 문자만 보내왔다.
"Come stai?"
그의 Come stai에서는
하드보드지처럼 딱딱한 책임감 외에 어떤 것도 느낄 수가 없었다.
나는 그에게
나를 책임지라고 한 적이 없는데
그는 언제나 나의 존재 자체를 버거워 했다.
마지막 점심 식사에서 그는 말했다.
"가족을 만들고 싶지만,
너랑은 아닌 것 같아. 이제 우리도 그걸 인정해야지."
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혹시나 하는 기대를 하고 점심에 따라나선
내 자신이 수치스러웠다.
7년간 어떻게든 말라 죽은 화초를 살려보려고
물도 주고 때 맞춰 해도 비춰주고
영양제도 뿌려 준 내 자신에게 모멸감이 느껴졌다.
나는 어찌할 지를 몰랐다.
정말 어떻게 해야할 지를 몰라
산더미 같은 스캄피 스파게띠와
싱그러운 프리울라노 한 잔을
그 따사로운 광장 테라스에 남겨 둔 채
무슨 정신에선지,
아니면 마지막 자존심이었는지 계산을 하고 먼저 걸어 나왔다.
그는 나를 더이상 따라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