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의 끝

바롤로: 이탈리아 와인의 여왕이라고 불리는 북부 피에몬테 지역의 와인


아드리해 바다가 보이는 3층 우리집 테라스에서는

타운의 공용 주차장이 바로 보였다.


창문을 열어두면 차 엔진 소리, 문 닫는 소리,

사이드 브레이크를 잠그는 소리로

어느 집 누구의 차가 도착했는지 알 수 있었다.


클로드는 차를 빨리 몰고 급하게 세운다.

꽈뜨로 중형 세단이라 엔진 소리가 낮고 거의 나지 않는다.

클로드는 차를 후진 주차하기 때문에

차를 잠시 멈췄다가 후진하는 소리가 난다.


서류 가방은 항상 뒷자석에

두니까 차 문을 두번 여닫는 소리가 나고,

현관 열쇠를 다른 열쇠들이랑 같이 가지고 다녀서

걸을 때 짤랑이는 소리가 난다.


엘레베이터는 이용하지 않으니까,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가 점점 커진다.


나는 언제부턴가 이 소리를 기다리면서도

테라스 틈 사이로 그의 차가 맞는 걸 확인하는 순간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

빈 속에 그라빠를 마신 것처럼

가슴이 벌렁이고 맥박이 빨라졌다.


어쩔 줄을 몰랐다.

정말이지 내 손을, 내 표정을,

내 눈빛을,

내 자신을 어떻게 해야할 지를 몰랐다.


나는 내 단전 밑바닥에서부터 박박 긁어 끌어 모은

딱딱하게 말라 비틀어진 경쾌함을

그에게 어떻게든 내보이려 애쎴다.

하지만, 그는 내 얼굴도 보지 않고

침대로 직행하거나 나를 보고 한숨을 짓고는 다시 나가버렸다.


오빠는 나한테 응큼한 사람이라고 했다.

클로드는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통 모르겠다고 했다.


내 생각을 솔직하게 말하면

모두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거나 나를 싫어하니까.

나에게 실망하고 마니까.

나는 내 속마음을 말하기가 겁이 났다.

나는 내 진심을 말하기 위해 열번이고 백번이고 생각했다.

'나 정말 이 말을 입 밖에서 꺼내도 될까?'


그들을 모두 너무나도 좋아했지만,

내가 진짜 내가 생각하는 말을 하는 순간 사람들은

바롤로에 봉골레를 먹는 사람보듯 나를 봤다.

나는 다른 방법으로 사랑을 받아야 했다.


소리를 지르고 내가 맞다고 화를 내본 적이 없다.

나에게 자신이 없었다.

나는 철이 없고 이기적이 사람이니까,

내가 진짜 원하는 걸 말하면 모두 부담스러워서 나를 떠날테니까.


오빠는 물었다.

너 정말 클로드를 사랑하는 거 맞는 지

먼저 잘 생각해봐.


나는 클로드를 정말 잃고 싶지 않았다.

아이를 갖자는 말도,

나는 너보다 돈을 많이 벌 능력도 없다고 말할 수 없었다.

7년간 아무 생각없이

하루하루 손 가는대로 풀어헤쳐 이제 얽히고 설킨

쓰레기 같은 이 실태래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 지

정말 엄두가 나지 않았다.

화가 나서 통째로 쓰레기 통에 쳐박았다가도

이내 다시 꺼내와서 내 앞에 다시 펼쳤다.

'풀어, 풀 수 있어. 나는 할 수 있다.'


2년 아니 7년의 시간이 이렇게 흘렀고,

어느새 나는 30대에서 40대가 되었다.

그의 머리는 어느새 회색빛이 돌고 있었다.


내 30대 후반은 뚜껑 열린 하수구처럼

순식간에 회오리쳐 빠져 나가버렸다.

나는 지금 수채구멍을 들여다보며

뭐 하나 건질 건 없나 들여다 보고 있다.


어쩌면 꿈만 같았던 내 결혼 생활.

나는 그 꿈이 단꿈이었기 때문에 지금 우는 것일까.

악몽이었기 때문에 우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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