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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폴란드.
인천발 비행기 연착으로
다음 환승 비행기를 놓쳐
의도치 않게 이곳에서 혼자 하룻밤을 잤습니다.
(한국에 오기 전
아가사 크리스티의 봄에 나는 없었다를
막 읽기 시작했는데,
제 나이 또래의 주인공이 기차 연착으로 며칠 간 홀로
처음 가 보는 장소에 고립되는 내용이었습니다.
무언가… 나의 염력이 작용해서 나 또한
이런 일을 겪는 것은 아닌지
잠깐 뜨끔)
언젠가 저의 이혼한 친구는 파리였던가에서 이런 일이 벌어져
옆 자리 여행객과 하룻밤에 3번을 했다는
미드같은 이야기를 들려준 적도 있습니다만,
저에게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현지 돈도 없고, 지도도 없고 수도가 뭔지 시내가 어딘지,
어떤 간판도 읽을 수 없는…
언젠가 뉴스에서 본 제주도까지 떠내려온 북극 펭귄이
이런 심정이었을까요?
뜬금없는 장소에서
혼자 무엇을 할까 호텔방에 짐을 풀고 잠시 갈등했습니다.
-그냥 쾌적한 침대에서 푹 잘까?
인생 뭐 있나, 돈이나 벌자, 일을 할까?
… 그러다 튀어 나가
로비의 직원에게 버스로 시내 가는 방법과 시간만 묻고
정류장으로 향했습니다.
시도.
이번 한국에서도 사업상 계획한 일이 있었는데
결국 어떻게 보면
배짱이 없어 진행하지 못 하고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모르죠.
어쩌면 포기한 저의 선택이 더 나은 결과로 다가올지도
아무도 모를 일이죠.
많은 경우에서 그렇다는 걸 아는 지금의 나이가 나쁘지는 않군요.
처음엔 아이 생각이 없었고
조카를 보고 아이 생각을 하다가
지금은 뭔가 너무 많이 알아버린 상태.
운명이 있다고 믿기 때문에 (될 일은 된다)
그것을 거스르지 않으려고 하는 편인데
이런 제 선택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 지!
이번에 한국을 떠나기 전, 친한 친구와도 같은 오빠가 말하더군요.
- 뭐, 남들이 뭐라고 생각하는 게 중요한 건 아니지만
너 정도면 남들이 부러워하는 인생이지,
애 없는 것만 빼고.
근데 모르겠다 그게 너한테는 더 좋을 수도 있고,
뭐 아닐수도 있고. 이제 선택을 해야지.
저는 제가 이기적이라는 것을 압니다.
아이에게 들어갈 내 돈, 내 노력, 내 시간, 내 건강…
아깝지 않게 다 내어 줄 수 있을까?
자신이 없다가도
내가 가진 알량한 지식이나 배경을 누군가에게
물려주지 못 한다는 생각이 또 아깝죠.
내가 경험해 보지 못한 기쁨을 한번 누리고 싶다가도
슈돌 애를 기대했는데 금쪽이가 나올 수도 있다는 걱정이 들기도 하고.
그런데
친한 친구가 나에게 이런 고민을 얘기한다면
저는 그런 사고 방식과 태도라면
전혀 준비가 안 된 것 같다고 말해 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진짜 왜 낳으려는 건데?"
아는 언니는 허약한 몸에 노산으로 둘째를 낳기 전 남편과
아이의 상태가 어떻든 감사하게 받아들이고 사랑으로 키우자고 했다는 말이 잠깐 머리를 스쳤습니다.
말 그대로 정처 없이
사람들 무리를 따라가다 보니
바르샤바 궁전(아마 서울의 경복궁 같은?)까지
도착했습니다.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제 인생 처음의
계획도 목적도 없는
혼자한 여행이었습니다.
이곳이 폴란드든, 몰디브든, 화성이든
중요하지 않았어요.
어둑해지자 다시 버스를 타고 호텔로 돌아와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하고
차분하게 저녁을 먹고
고슬고슬한 침대에 누워
나름의 껍질을 깨고 나온 오늘의 저에 대해 약간의 뿌듯함을 느끼고 잠에 들었습니다.
처음엔 틀어진 스케줄과 어이없는 대처때문에
땀이 솟아날 정도로 항공사 직원들을 욕하고 화냈는데,
지금은 호텔에서 평온하게 아침식사를 하고 있습니다.
-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도 나쁘지 않네.
편히 쉬고 쾌적한 상태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어서
오히려 좋습니다.
어찌어찌 시차 적응까지 완료!
뽀송뽀송한 상태로
지금은 게이트 앞에서 이탈리아 행 탑승을 기다립니다.
아직도 어제 혼자 한 폴란드
(아직도 수도 이름 모름… 바르샤바인 듯)
여행이 현실이라고 생각되지 않아요.
집에 돌아가면
봄날에 나는 없었다를 이어 읽을 생각입니다.
그녀의 결론이 궁금해지네요.
<와인과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