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하지 않는 술

바르돌리노: 가르다 호수 베네토 지역의 레드 와인, 드라이한 과일향)




- 나도 끌리는데, 상대도 나한테 끌리는 사람. 있지 않아요?


50을 바라보는 자상한 남편과 아이를 둔 아는 언니의 입에서 나온 저 질문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지 않은 이유는

아마도 우리가 베니스 뒷골목 바에서 바르돌리노를 연거푸 마시고 있었기 때문이었을지도.


언니의 남편은 가정적이고 아이는 밝았다.

언니 또한 나름대로 본인의 커리어가 있어 '저렇게 사는 거야 말로 행복 아닐까'라고 언제나 생각했었다. 그런 언니가 결혼한 나에게 이런 질문을 했을때, 나는 갑자기 취기가 올라오는 것 같아 머리가 어지러웠다.


- 네? 저는 일단 제가 결혼을 한 상태며는 어떤 남자를 보고 그런 생각이 든다는 그런 가능성 차체를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어서.


이 말을 하면서도 도대체 내가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를 내뱉고 있는 건지 한심하게 느껴졌다. 앞뒤가 하나도 맞지도 않거니와 내가 생각해도 너무 고리타분하고 지루해서 나같은 사람하는 더이상 말하고 싶지 않을 정도였다.



언니는 당당했다. 남편에게 따지고, 화내고, 짜증내고, 명령했고 남편은 그 모든 것을 받아 주었다.

좀 과장해서 감정의 쓰레기통 같았다. 그런데도 남편은 언니에게 아직도 죽고 못산다고 했다.

언니는 졸혼을 생각한다고 했다. 남편은 정말 좋은 가정에서 자란 좋은 사람이지만

지금 같이 사는 건 순전히 아이때문이라고 했다.


- 이제 그런 사람 안 나타날 것 같죠? 분명 나타나요.


언니의 눈은 반짝였다.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바로돌리노를 한 모금 들이켰다.

잠시 잠깐 무언가 더 자세히 물어보고 싶었지만, 이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았다.

언니는 자연스레 말을 이었다.

- 원래 감성적이고 그렇지는 않나봐?


나는 따로 무슨 말을 해야할 지 몰라 와인 잔에 입술을 갖다댔다.




언니는 정말이지 평온하고 자유로워 보였다. 한없이 자유로웠지만 어떠한 불안함도 느낄 수 없었다.

마치 이슬을 머금은 풀잎처럼 싱싱했다.



지금 생각하니 우리는 마치 여대생 같은 대화를 하고 있었다.




나는 잠시 생각에 빠졌다. 혼란스러웠다.

그가 나에게 했던 그 모든 말들이 다시 되살아나 머릿속을 헤집고 다녔다.

나야말로 어쩌면 그 때 그의 감정의 쓰레기통이었음에도 나는 왜 그에게 더욱더 의지하고 싶었을까.

밀어내면 밀어낼수록 자존심도 뭣도 없이 그에게 매달리던 나.



가슴 속이 답답해져왔다.

언니의 남편이 그랬던 것처럼, 나는 단지 우리 부모님이 살던 대로 살고 싶었을 뿐이었다.

서로를 존중하며 잔잔한 호수처럼 평생을 살고 싶었다.

그런 우리는 어쩌다 바다를 선망하는 사람들과 결혼하려 하는 것일까.

그들은 시시각각 변하는 거친 파도를 즐기고 어디든 자유롭게 떠나가고 싶어하는데.


- 나는 남편이 틀에서 벗어나서 좀 과감하게 자유롭게 표현했으면 좋겠어.

언니의 아무렇지 않은 푸념에 나는 다시 탁자를 내려보았다.

자주 듣던 익숙한 말들에 실망과 분노에 찬 누군가의 얼굴이 떠올랐다.





집에 돌아오는 길. 벌써 해가 짧아져 어둠이 내려 앉은 지 오래.

이탈리아 고속도로는 가로등이 없어 어둠을 캐내며 광산 속을 파고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나는 진심으로 부모님 같은 삶을 살고 싶었을까?

아닌 것 처럼 덮어두었던 참혹한 과거가 싹을 내며 지면 위로 고개를 내밀었다.

나는 그들이 싫었다. 맛없지도 유해하지도 비싸지도 않은 고결한 순두부 같은 그들이 싫었다.

그들의 무결점이 싫었다.


평생 파도 한번 일지 않은 그들의 삶이 호수는 커녕 공사장의 물웅덩이에 고인 흙탕물 같았다. 나는 벗어나고 싶었다. 그 일부가 되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들과의 모든 연결을 끊고 싶었다.

서울로 대학을 가고, 나는 한국을 떠났다.


버려진 고아처럼 새로 태어나고 싶었다. 나는 햇빛에 찰랑이는 드넓은 나 자체이고 싶었다.

그럼에도 항상 그들의 한없는 자애의 손길을 갈망했다.

나는 나와 같은 사람을 원하면서도 나와 전혀 다른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누구의 딸도 아닌 내가 중심인 찬란한 내 가족을 만들고 싶었다.

그랬었다.




저 앞에서 사고가 났는지 황망하던 고속도로가 금새 꼬리를 문 불빛에 대낮처럼 변했다. 나는 혼잣말처럼 나에게 설명하고 질문했다.



- 그런데, 지금 내 꼴을 좀 봐. 그는 내가 내 부모를 바라보던 눈길로 나를 보고 있어.

나는 사랑하는 방법을 몰라. 우리 부모가 사랑했던 방법으로 끊임없이 내 감정이 바닥날 때까지 말없이 퍼 주고만 있어. 네가 인간이라면 언젠가는 이런 나를 알아주겠지 하면서?


도대체 내 감정이란 어디에 있는건데?

도대체 내 만족이란 어디에 있는건데?

왜 끝까지 타인에게 의지하는 건데?


이게 사람들이 말하는 사랑이고 의리야?


엄마는 지금도 너 그냥 살고싶은대로 살라고 하지만,

사실 내가 살고싶은 게 뭔지를 모르겠어.

이렇게 시멘트 바닥처럼 메마른 사람이 나인지. 사실은 방어기제인지.





다 변명같았다.

말 한마디 없이 하숙생처럼 돈만 벌면서 '이게 다 우리 가족 잘 먹고 살사는 길이지' 하면서 자기 위안하다 결국 버려질, 멀쩡한 사랑을 받아 본 적도 없고 할 줄 도 모르는 그런 불쌍한 노친네 같은 삶.


대학교때부터 미아 신고가 접수된 나는 도대체 어디에 숨어 있는지 죽었는지 아직도 수사중이다.

엉뚱하게도 실제 실종자가 아닌,

내가 기댈 수 있는 애인, 친구, 남편을 찾아 헤매다가 결국 그 많은 시간을 다 허비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수사 재기.


색이 바랜 실종신고 포스터를 손으로 조심히 펴 본다. 오래된 사진이지만 아직도 눈빛만은 반짝인다.


- 이제 그런 사람 안 나타날 것 같죠? 분명 나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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