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돌아 보면
별별 일이 다 있었지만,
나를 칭찬하고 싶은 부분이 하나 있는데,
배고프다고 아무거나 주워 먹지 않은 것이다.
이것은
실제 음식 뿐만 아니라,
사람과 일에도 해당된다.
사람이 궁지에 몰리면
평소에는 절대 하지 않을 판단을 하게 된다.
돌려 말하면 나답지 않은 판단.
왜냐면,
그 때는 내 자신의 판단에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나 때문에
이 모든 거지 같은 일들이 일어난 것 같으니까.
실제로 배도 고파 봤고
사람에게 실연도 배신도 당해 봤고
다니던 회사가 부도난 경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슨 똥고집인지
아무거나 주워 먹지 않았다.
인생은 자기 만족이고
나는 이런 나의 성격이 마음에 든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썩은 음식은 썩은 음식이다.
잠깐 배를 채우려고 한 입 먹으면
응당 배가 뒤집어져서 안 먹으니만 못하는.
그런데도
사람이라는 게
배가 고프다 보면
- 이 정도면 괜찮겠지?
- 한 번 정도는 괜찮겠지?
하고 꿀꺽 삼킨다.
내 까탈스러운 성격이 불편할 때도 많지만
이럴 때는
참 고맙다.
하지만
나라고 아주 별 수 있을까.
상황이 급박하다기 보다
뭐랄까
마음이 급박할 때면
이런 검은 유혹들은
소매치기가 보이지도 않는 돈냄새를 맡듯
설탕 한 톨에 덤벼드는 개미떼들처럼 스믈스믈 몰려오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한 쪽 발을 이미 점령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정신 차리자.
보통 사람이 이런 궁지에 몰리는 경우는
내가 미처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일어났을 때이다.
미래를 미리 걱정할 필요는 없지만,
어떠한 일도 나에게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은
살아가는 데에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아주 좋은 일도.
아주 나쁜 일도.
어떠한 일도 내 인생에 일어날 수 있을 수 있다는
여지를 두는 것.
물론,
다른 사람에게도.
그렇게 생각하다보면
나나 그 누군가가 그렇게 불쌍해 보이지도 않고
부러워 보이지도 않는다.
그러다 보면
마음이 조급해지는 일은 덜하게 된다.
우리 주변에 일어나는
일
자체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게 된다.
중요한 것은 그런 일이 일어난 후에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이다.
설사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났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단지 내 잘못이 아니다.
그런데 나를 탓하다보면
무려
나를 믿지 못하게 되고,
기준이 무너진 나는
불안해지고
조급해지게 된다.
.
아이러니하게도
돌이켜보면,
근래 요 몇년
나는 지금보다 수입이 더 많았음에도
재정적으로 심리적으로 굉장히 급박한 느낌으로 살았었다.
굶어 죽지 않을 정도의 돈이 있다면
문제는 돈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조급한 마음은
알 수 없는 주술을 부려
피리부는 아저씨를 따르는 생쥐들처럼
불운한 것들을 줄줄이 불러들인다.
불운한 것들은
귀신같이 불안정하고 약한 존재를 찾아낸다.
자신다운 결정을 해야 후회가 없다.
비루해지지 말자.
어떤 경우에도.
왜냐면,
비루한 꼴을 보인다고 해도
결국에 그런 사람의 손에
돈이나 그가 원하는 사람이 들어오는 일은 없을테니까.
비루한 마음은
불행 이외에는
아무것도 끌어당길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