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공부하던
우리 스터디 그룹 중
6명을 한꺼번에 만나는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11월의 어느 토요일 늦은 오전.
햇살은 따사로웠고
단풍 빛이 만연한 바람 한 점 없는 산자락에는
안개가 오묘하게 담배 연기 도넛처럼 끼어 있었다.
함께 와이너리를 방문하고
점심을 먹고
다시 다른 와이너리 하나를 방문하는 스케줄이었다.
정시에 맞춰 와이너리 주차장에 도착하니
이미 한 커플이 와 있었다.
- 어머, 일 년 만인가?
- 아냐, 거의 이 년 만인걸?
오랜만에 만나는데도 어색하지 않았다.
베니스에서 호텔을 하는 이 친구들은
어제 여기에 도착했다고 했다.
조금 기다리니
나머지 세 명이 도착했다.
한 명은 여기 와인 생산자들과 인맥이 두터운
우리 중 가장 연장자.
한 명은 동네가 가까워 가끔 만나는 친구.
나머지 한 명은
한국 나이로 46세.
요가와 바다를 좋아하는 남부가 고향인 친구.
마지막 친구는 도착하자마자
말을 꺼냈다.
- 와! 반가워! 다들 운동들 열심히 했나 봐?
좋아 보여!
- 너두 좋아보이는데?
그러자 친구는
정말이지 미묘하면서도
평온한 미소를 지으며
돌연
외투를 풀어 배를 보여 줬다.
- 나는 사실 좀 몸이 달라졌어!
4개월째야!
남자친구가 있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
임신을 한 줄은 우리 중 아무도 몰랐던 것 같다!
모두 축하의 인사를 건냈다!
오랜만에 함께 와이너리 투어를 하면서도
나는 그 친구가 임신했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아
친구의 배를 힐끔 쳐다보았다.
점심을 먹기 전 약간의 짬이 났고
여자들끼리 모여 잠깐 수다를 떨게 되었다.
- 축하해! 근데
계획을 한거야? 아니면
선물이 우연히 찾아 온거야?
친구 왈.
본인은 항상 아이를 갖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남자 친구는 나이가 51이고
아직도 아이를 갖는 것에 대한 확신은 없었다고.
물론
지금은 기뻐하고
다음 주부터는
남자 친구가 있는 도시로 간다고 했다.
점심을 먹으러 찾아간 동네 레스토랑.
나는 마침 차에
저번에 프랑스에 들렀을 때 산
샴페인이 한 병 있어서
괜찮으면 같이 마시자고 하였고
다행히 식당에서 괜찮다고
칠링까지 해주신다고 해서
샴페인을 열었다.
모두 건배를 하며
다시 한번 축하한다고 하니,
친구는 조금 쑥쓰러워 하였다.
역시 겨울 메뉴는 무거운 게 좋다.
치즈를 녹인 폴렌타에
적양파와 겨자를 곁들인 송아지 고기.
이탈리아에서 좋은 것은
각자 먹고 싶은 것을
알아서 자기 원하는 만큼만 시키는 것이다.
메뉴를 통일하지 않아도 되고
눈치 볼 것 없이
내 양껏 시키면 된다.
나중에 나눠 먹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조금씩 덜어서 나눠 먹을 수도 있고.
누군가는 자기 음식만 먹고 싶으면
나눠 먹지 않아도 된다.
그걸 거절하는 것에 그 누구도
화를 내거나
상처 받지 않는다.
이게 참 좋다.
맛있는 음식과
즐거운 대화.
우리는 이 동네
화이트 와인 한 병과 레드 와인 한 병
디저트로 스위트 와인도 한 병 시켰다.
오늘 식사 대화의 주제는
자연스럽게 남녀 관계로 이어졌고
역시 이탈리아는 북유럽이 아니기 때문에
아직도
남자는 재력만 있으면 그래도 먹어주지 않냐는 뭐...
한국에서도 할 법한 대화들이 오고갔다.
그러다가
나는 갑자기 이탈리아 사람들의 생각이 궁금해졌다.
'너희들은 결혼이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하니?'
'아니.'
충격적이게도
입을 맞춘 듯
아니라고 대답했다.
25년차 동거 커플.
일찌감치 이혼하고 아들 하나 독립시키고 혼자 사는 사업가이자 전문직 남.
남자 친구의 아이를 임신한 아직 결혼 계획이 없는 공무원 여.
남자 친구는 있지만 아이는 없는 외국계 대기업 다니는 여.
모두.
- 결혼은 멋진 것임에는 확실하지.
하지만 필요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아.
나는 살짝 생각에 잠기었다.
그리고 친구들은 나에게 물었다.
-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 응? 음... 나는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잘 모르겠어.
여기는 결혼을 하지 않고 아이를 낳는 경우가 정말 많다.
체감상 거의 반반?
아니 더 많은 것 같기도 하다.
그럼에도 정말 별 탈 없이 잘 산다.
뭐, 아이를 낳았는데
남자가 연락이 두절되거나 하는
우리 엄마 세대들이 우려하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비단 돈 때문에 결혼을 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나도 아직
이치들의 생각을 100% 이해하기는 힘들지만,
정말이지
굳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 첫번째인 것 같고
두 번째는
결혼이라는 제도를 믿지 않는 것 같다.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상상 속의 멋진 유니콘 같은 느낌.
내가 아는 한 커플은
둘 다 안정된 직장을 가졌었고
오래 사귀었고
오래 함께 살았고
아이도 둘이나 낳았다.
하지만,
결혼은
첫째가 초등학교에 들어간 지 한참이나 지나서야 했다.
물론 모두의 축복 속에
아주 성대하고
로맨틱하게.
사실,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고 기른다고
어떤 불이익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한 부모 가정은
한국보다는 아니지만
물론 어려움이 있으리라 본다.
내가 생각한 결혼은
약속이었고 책임이었다.
사랑에 대한 약속.
가족에 대한 책임.
그런데
이들은 말한다.
- 부모가 되는 것에 결혼은 전제가 아니다.
- 결혼은 사랑의 보장이 아니다.
뼛속까지 토종인 나는 궁금하다.
그렇다면
결혼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가끔,
감정이란
너무나도 사사로운 찰나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나는
사랑이란 것이
어떠한 감정의 종류인지
아니면
믿음이나 사상 같은 것인지
잘 모르겠다.
사랑은 아름다운 것이지만,
이것을 전제로 무엇을 하기에는
너무나 불안정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들도 알고 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갖고
가정을 꾸리는 것이
멋진 일이라는 것을.
하지만,
그들은 그것을 그 누구에게도
강요하지 않는다.
자신에게조차도.
일반적인 관점의 일류에 도달하지 못하였다 할지라도
각자의 입장에서
최선을 다한다.
본인들이 원하는 것을 하며.
나이가 46인들
결혼을 하지 않은들
아이를 원하면 낳는 것이다.
이제야 조금 이해가 갔다.
이탈리아에서는
맛집에 줄을 서지 않는다.
그 곳이 맛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나는 지금 배가 고프고
거기가 안 된다면
다른 식당에 가서 즐겁게 식사하면 되니까.
지금 나의 시간과 감정은 소중하니까.
집 모양도 제 각각,
차 모델도 컬러도 모두 다르다.
그러고 보면,
자주 망각하게 되지만
사실,
우리 모두는 다른 게 맞고
내가 너처럼 살
필요는
전혀
없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우리가 느끼는
다른 사람과 다름에서 오는 불안은
내가 그와 다르다는
기본 전제를 부정하는 것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나에게 부정당하는 나는
외로울 것 같다.
나는 행복하다기 보다
즐거운 인생을 살고 싶다.
행복은 왜인지 먼 미래의 일인 것만 같다.
나는 오늘
나의 하루를
즐겁게 보내고 싶다.
내가 원하는 것에 집중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