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등산로는
단풍길이 예쁘다고 말했다.
험하지 않다는 말에
대충 운동복에 운동화를 신고 길을 나섰다.
사실 이탈리아에는 '단풍'이라는 단어가 없다.
그냥 잎의 색이 변했다고 말하지
그 신비로운 변화와 광경 자체를 한 마디로 표현하는 말이 없다.
물론 단풍놀이도 없고.
이탈리아의 가을은 왜인지
한국의 가을보다 긴 것 같아서 좋다.
사계절이 사이좋게 나누어진 느낌.
이탈리아의 가을산은
한국의 그것과 많이 달랐다.
덜 알록달록하지만
솜마코의 형광 주황과도 같은 작은 잎들이
파도처럼 펼쳐진 모습은
내 기분을 금새 천진하게 웃는 아이처럼 만들었다.
계절이 변하지 않는 나라로 이민을 간 친구를 만난 적이 있다.
자전거로 다른 나라를 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같은
생소한 느낌.
- 일년 내내 여름인거야.
- 나는 추운 거 싫어서 좋을 것 같기도 한데?
- 일년 내내 같은 옷만 입고,
같은 음식에.
일년 내내 그냥 변화가 없어.
그냥 쭉 가는 거야.
진짜 지겨워.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던,
계절이 바뀌면 옷장을 정리하고
화단의 식물들을 정비하고
제철 과일과 생선을 찾아 먹는 일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어느 순간
아침에 집을 나서자 마자 입김과 함께 느껴지는
생쇠의 냄새.
걷다보면 구수한 군밤 냄새가 났다가
달달한 붕어빵 냄새가 났다가.
그것들이 사라지면
아카시아 향이 은은하게 풍기다가
또 어느 순간이 되면
골목길을 잘못 들어서면 진득한 음식물 쓰레기 썩은 냄새
지하철 옆자리에서 나는 빨래 덜 말린 냄새.
그러다가
빛나는 노란색에 이끌려 걷다보면
똥냄새가 나기도 하는.
내가 대나무를 좋아하는 이유는
매듭이 있어서이다.
예전엔
매끈하고 길쭉하게 뻣은 사이프러스처럼 살고 싶었다.
쉼 없이
쭉 탄탄대로를 달리 듯.
하지만,
살다보니 한 번 씩 쉬어가는 것이 좋다.
스스로 정리되고
힘이 비축되는 그런 시간들이 필요하다.
40:20 법칙이 있다.
40분 일하고 20분 쉬면 일의 능률이 오른다는 마법의 법칙.
예전에는 이 20분이 아까워 쉬지를 못했다.
인생은 생각보다 길고
또 생각보다 다이나믹하다.
등산길의 끝에 작은 마을이 있었고
작은 식당의 따뜻한 생 포르치니 스프를 먹고 나니
몸이 풀려 졸음이 몰려올 정도였다.
그 옆 바에 들어가니
이 작은 동네와 어울리지 않는
모던한 인테리어와 활기찬 사람들로 가득했다.
에스프레소 한 잔과 함께 나온 작은 버터 쿠키를 먹었다.
돌아오는 길은 올라왔던 길과 다른 길을 선택했다.
이탈리아는 가을이 넘어가면
5시만 넘어가도 어두워져버린다.
생각해보니
등산길에 이상하게도
정말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은 것 같다.
그냥 걸었고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