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의 의미




와인을 생산하는 어떤 분에게 초대를 받았다.


거리가 좀 멀어 갈까말까 하다가

일과를 마칠 시간인 저녁 무렵에 약속을 잡았다.



얼마나 산골이던지.

금새 날은 어두워졌고


나중에는 차 한 대만 겨우 지날 수 있는

오르막 돌길을 오르며

내려오는 차가 없기를 기도했다.



그마저도

네비에 잘 잡히지 않아

출구도 없는 이상한 골목으로 길을 잘못들었다.




다시 전화를 걸어

겨우겨우 그 와이너리 앞에 도착하였다.


그야말로 산꼭대기에 위치한 그 곳.



어둑어둑한 와중에도

내가 지나왔던 풍경과는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진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따로 대문은 없었지만,

2층 높이의 클래식한 느낌의 코랄빛 빌라 아래

주차창에는 이미

버건디 컬러의 60년대 알파로메오가 깔끔하게 주차되어 있었다.





이내 차 소리를 듣고 나온

에드.


- 안녕하세요. 길을 좀 헤맸네요.


- 오시느라 고생했어요.



바로 위 빌라 앞 정원으로 나를 안내한 그는

밝은 미소의 아내 이바를 소개해주었다.




이렇게 귀엽고 우아한 빌라와 장소가

이 산동네 끝에 존재하다니!



우리는 석양을 바라보며

호박 장식이 된 몇 개의 테이블이

아기자기 잘 정돈된 정원에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바는 이내 집안으로 들어가고


나와 에드는 바로 옆의 포도밭으로 향했다.





그러고 보니

그는 아이러니하게도

백발의 대머리에 장발이었고

톰포드 뿔테 안경에

아이다스 오리지널을 신고 있었다.


그의 나이를 추정할 수가 없었지만

평범한 사람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그에게서 어떤 자만심이나 예민함 같은 것은

느낄 수 없다는 것이 신기했다.





집으로 돌아오니

이바가 주방으로 우리를 안내하였다.

해가 지니 갑자기 싸늘해졌는데

빵 굽는 오븐의 열로 따뜻해진 주방은 너무나도 포근했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시골풍의 주방이었지만

모든 것이 깨끗하고

정돈되어 있었고

이바가 직접 만든 전통 방식의 레이스 장식들이

그 공간을 더울 따뜻하게 만들었다.





하얀 레이스 장식의 식탁보가 깔린 나무 식탁에는

초가 세 개 켜져 있었다.



갓 구운 빵을

동네 가게에서 산 살루미와 버터, 그리고

자신들이 직접 기른 올리브 오일과 함께 내놓았다.





오늘 처음 만난 부부와

처음인 장소에 앉아 있는데도

그 분위기가 너무나도 평온하였다.

헨젤과 그레텔이

처음 과자집에 들어왔을 때 이런 느낌이었을까?




우리가 특별한 대화를 한 것도 아니었고

사실 별다른 음식이랄 것도 없었다.




무엇보다

그들은 나에게 과한 친절을 베풀지도 않았고

쓸데없는 질문도 없었다.


그런 그들의 태도가 나를

노곤할 정도로 편안하게 만들었다.




나는 사람을 대하는 그들의

세련된 태도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지 궁금하였다.




보통 먼저 나이나 개인사를 물어보는 일이 없지만

궁금했다.

놀랍게도

내가 생각한 나이보다 20살 이상 더 차이가 났다.

우리 부모님보다도 많은 나이었다.


심지어 손자까지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비는 소녀풍의 레이스업 가죽 플랫을 신고 있었고

거기에 톤온톤의 7부 레깅스를 맞춰 입었었다.

하늘하늘한 잔 꽃무늬가 예쁜 쉬폰 원피스와 동그란 뿔테 안경이

단발 생머리의 그녀와 잘 어울렸다.




그 외에 우리가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눈 것은 없었다.

와인이나 양조, 자연, 여행, 음식 재료 같은 것들에 대한

대화만으로도 시간은 꽉꽉 채워졌다.





좋은 와인과 좋은 음식.

그리고 좋은 사람들.


나에게 좋다는 것은 거부감이 없다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보다 20살이 많은 친구도 있고

40살이나 어린 친구들도 있다고 했다.

그래서 얼마 전에는 100살이 가까운

와인을 만드는 한 동네 친구가 운명을 달리했다고 했다.


친구를 사귈 때 나이는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니라고 했다.

사람 사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강요나 부담이 없는 관계라고 생각한다고.



일부러 연락을 하거나 억지로 약속을 잡지도 않는다고 했다.


시간이 맞아

어떤 친구가 우리집을 찾아온다면

직접 정성들여 만든 맛있는 와인과 음식을 함께

맛보며 이야기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축복이라고 했다.




가끔 서로의 손을 잡거나 어깨를 다독이는

그들의 작은 행동을 보며


묵은 에어컨 필터 청소처럼

내 영혼이 깨끗하게 씻겨지는 기분이 들었다.








돌아오는 길,

내가 저 나이가 되면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생각해 보다

이내 아무 쓸모없다 생각하고

음악을 들었다.








나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싫지만

좋다.



알고 있다.

이렇게 좋은 시간을 보냈지만

나는 아마도 이들과 추후에 개인적인 연락을 하거나

만나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정말 이상한 기분이었다.

구멍이 송송 뚫린 내 마음에

따뜻하고 달콤한 슈크림이 가득 채워지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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