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식으로 하자면
언니라고 하기에는 나이 차이가 많이나는 것 같은데
그렇다고 별 다른 호칭이 생각나지 않기에
우리는 그냥 그 언니를 언니라고 부르기로 했다.
그 언니는
보통 해외 정착하는 다른 '언니'들과는 달리
유학생도 아니었고 현지인의 배우자도 아니었다.
이러저러한 일로
몇 년 이탈리아에 머물러야 하는 사람이었다.
우리 동네 근처에서 벌써 몇 년 전부터 살았지만
나나 그 언니나
사람을 찾아 만나고 다니는 성격이 아닌지라
서로 어느정도 정착한 후에 우연한 작은 모임에서 만나게 되었다.
해외에 오래 사는 사람들을 보면
거의가 표면적으로 현지화되어 있거나
현지 성향이 강한 사람이 자연스레 나와서 살고 있는 것이 대부분인데
그 언니는 그냥 한국 사람의 느낌이었다.
우리는 마침 같은 어학원으로 옮기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자주 만날 수 있었다.
개인사를 꼬치꼬치 묻지 않는다거나
연락을 자주 하지 않는다거나
사적인 이야기를 보따리 풀듯 방사하지 않는
뭐 그런 것들이
서로를 편하게 했던 것 같다.
나는 언니가 없어서 그 기분을 잘 모르겠는데
그 언니를 만나면
소설 같은데서 보던 언니의 느낌이 들었다.
내가 고민을 털어 놓은 적도 없을 뿐더러
나에게 조언을 해 준 적도 없고
큰 도움을 받은 적도 없지만,
그냥 그 언니를 만나면 의지가 되고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 그런 생각이 자연스레 들었다.
단순한 부러움이나 그런 것이 아니라
광활한 자연을 부유하는 돌고래를 보고 동경하는 뭐 그런 느낌이려나.
언니의 세 자녀는 각각 해외에 살고
남편은 한국에 있는데
언니의 주도하에 비행기 값은 절대 아끼지 말고
서로 시간이 맞을 때는 무조건 만나자고 결정했다고 한다.
그래서 다섯 가족의 일 년 비행기 값만해서도
많을 때는 자동차 몇 대 분이 나온다고 했다.
몇 해 전에는 로마에서 모두 모이기로 했는데
어쩌다보니
수동차를 렌트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언니는 면허만 수동이지 자동만 몰아왔다고 한다.
어떻게 교환도 뭣도 안 되는 상황에
남편까지 없어서 꼼짝없이 운전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뒤에 탄 아이들이 걱정하고 노랠까봐
속으로는 식은 땀이 줄줄 흐르는데
별거 아니라며 엄마만 믿으라고
정신을 바짝 차리고 했더니 어떻게 되더란다.
평소 언니 성격을 보면
아마 단전부터 용기를 끌어냈을 것이다.
언니는 굉장히 세심한데
또 어떤 일에 관해서는 전쟁터의 장군 같은 대범함이 있었다.
거기에는 언니만의 확고한 기준이 있는 듯 했다.
언젠가 언니의 대담한 결정이 대단해 보여
어떻게 그렇게 한거냐 물어보니,
그 결정을 내리기까지 시시콜콜 드러내지는 못했지만
사실 스트레스를 엄청 받아 피부 트러블까지 일었다고 했다.
속에서는 어떤 소용돌이가 치는 지 모르겠지만
언니는 항상 봄날의 돌로미티의 호수처럼 잔잔하고 평온했다.
우리는 막연히 언니가
고학력에 엄청난 부자 집안에
대도시 사람일거라 생각했다.
우리의 모든 추측은 멋지게 빗나갔다.
어느날은
언니의 집에 초대를 받아 갔는데
그 전에는 발견하지 못한
아주 조그만 거북이 장식품들을 선반에서 발견하게 되었다.
아예 이곳에 정착할 생각이 아니었기 때문에
언니의 집에는 가족 사진 외에는 따로 장식품이랄 것이 많지 않았다.
궁금하여
무엇이냐 물었더니
언니는
정말이지 맑은 눈을 반짝이며
그 거북이들 하나하나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어디에서 샀는지, 왜 샀는지, 어떤 거북이인지.
언니는 언젠가부터 거북이가 그냥 좋아서
거북이 장식품을 보면 모은다고 하였다.
작을수록 기분이 좋아진다고 했다.
하지만 거북이라고 다 사진 않는다고 했다.
정말 마음에 드는 거북이만 데려온다고 했다.
어쩌다보니 이게 즐거움을 주는 취미가 되었다고 했다.
언니는 작년에 한국으로 아예 돌아가게 되었고
한국에 나왔을 때 나는
언니가 사는 도시로 마침 출장차 가게 되었다.
언니에게 일하지 않는 며칠은 자유롭다 말하니
언니가 그럼 그때 호텔에서 만나자 하였다.
호텔 로비에서 만난 우리.
언니는 작은 여행가방을 들고 있었다.
무엇이냐 물으니
당황하며 여기 묵을 방을 잡았다 했다.
나는 크게 웃을 수 밖에 없었다.
언니는 멋쩍은 듯
멀리서 친구가 왔는데 당연한 것이 아니냐고 하였다.
아침마다 나에게 직접 가져온 원두를 갈아
맛있는 커피를 내려주고 우리는 작은 티타임과 함께 하루를 시작했다.
언니는 떠나는 날
나에게 그 원두 커피 세트를 작은 가방에 담아 주고 갔다.
언니와 보내는 2박 3일은 수학여행보다 빨리 지나갔다.
이번에 다시 돌아온 한국에 언니가 준 원두 가방이 남아 있었다.
아침마다 원두를 갈아 마시는데
아무래도 시간이 좀 지나 그런지 향은 많이 날아갔다.
그래도 버리지 않고 마신다.
그리고 아주 잠깐 잠깐 언니를 생각하고 하루를 시작하면 기분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