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그런 생각을 했니?
너는 그런 말을 꺼낸 적이 없으니까
네가 그런 생각을 하고 살았다는 걸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네."
20년도 넘는 친한 친구에게서 이 말을 듣고
누가 내 머릿속에 아이스 민트티를 부으면 이럴까,
뭔가 화함을 넘어선 찌릿함이 느껴졌다.
우리는 단 둘이 강릉 바다도 갔었고,
가끔 긴 통화도 하고
같이 종로 포장마차에서 소주에 삼겹살도 구워 먹고,
대학로에서 미팅도 했고
노래방에서 모르는 노래도 불러보고
서로의 집에서 잠옷도 빌려 입어 봤는데
그 오랜 시간 동안
내 생각이나 느낌을 말한 적은 별로 없었나보다.
그렇다고 우리 사이에 믿음이 없는 것도 아니고
우정이 없는 것도 아닌데.
별 얘긴 아니었다.
같이 생맥주 한 잔에
백화점 식당가 메뉴 모델처럼 비현실적으로 깨끗한 냉동 새우가 들어간 감바스 같은 걸 먹다가,
얼마 전
나 나름의 신기한 생각의 전환 같은 게 있어서
말을 꺼낸 것이었다.
- 내 인생이 왜 이렇게 무겁고 버겁고 그럴까,
뭐 그런 생각을 했었거든.
근데 사실 큰 어려움도 없고 문제도 없긴 한데 말이야.
사실 이렇게 살 수 있는 건 감사한 일이지.
그냥, 너무 많은 것에 의미를 부여했던 것 같아.
사람 관계에도 뭔가 의미를 부여하려고 했고
내가 하는 일이나 내 인생 같은 것에도.
친구는
별로 실용적이지도 않을 것 같고
별 의미도 없을 것 같은
'생각'을 하고 사는 내가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잠깐 어리둥절해 하다가
이내 조금 놀란 것처럼 잠시 말이 없었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발렌시아 여행 같은 것을 얘기하며
새우를 먹었다.
누군가에게 둥개둥개를 받을 생각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은 본인처럼 그렇게 다 예민하지 않습니다'
라는 글을 읽게 되었는데
그 후부터 말을 하는 데에 있어
필터링을 덜 하게 된 것 같다.
그래서 그냥 그런 말을 꺼냈었다.
그리고 오늘 사무실에서 본 김대리의 새 구두 이야기처럼
내 말은 그냥 흘러 지나갔다.
그게 좋았다.
어느 순간,
막 태어난 가젤처럼
주위를 둘러보게 되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나와 많이 달랐고
각자 다른 방식대로
자신의 영역에서 피흘리며 사냥도 하고 평화롭게 풀도 뜯고
나름의 삶에 충실하게 잘 살고 있었다.
의미는
머리보다 더 큰 가젤의 뿔처럼
어쩌면 별 의미 없이 무거운 것 같다.
가볍게.
가볍게.
가볍게.
묵은 가방 속 정리처럼
의미를 덜어낼수록
어깨가 참 가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