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전화를 잘 걸지 않는 편이다.
직접 만나서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도 만날 상황이 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가끔 전화를 한다.
토요일 아침,
심난한 마음을 들고
무작정 집을 나왔다.
심난한 마음 분리수거 통은 없길래
버리지 못하고 다시 들고 차에 올랐다.
차에 시동을 켜고 그냥
차가 굴러가는 대로 길을 나섰다.
그리고 한국에 있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주 오랜만에.
'뭐 하니? 자니?'
'아니, 지금 집에 들어왔어.'
끼리끼리 만단다는 말이 맞는지
이 친구도 어지간해서는 전화를 하지 않는다.
그래도 한국에 가면 사흘이 멀다하고 만나는 대학교 친구이다.
심난한 이유를 설명하려니 그것도
복잡하고
그냥 말장난이나 하며 낄낄거리며 시간은 흘렀다.
원래 가려던 카페 앞 주차장이 만차라
다른 카페로 차를 돌렸다.
여기도 주차가 여의치 않아
주변을 몇 바퀴나 돌다가 겨우 주차 자리를 마련했다.
그러면서도
계속 에어팟으로 전화는 이어가고 있었다.
핸드폰을 보니 밧데리가 간당간당하길래
전화가 끊기면 끊긴 줄 알라고
끊길 때까지만 통화를 하자고 했다.
그러다 친구가 불쑥 말을 꺼냈다.
'근데, 너는 왜 네 얘기를 안 하니?'
'응? 무슨 얘기?'
'아니, 일상 얘기 같은 거. 아니 그냥 네 얘기.
넌 어떻게 스트레스를 풀어?
답답하지 않아?'
이런 얘기를 이 친구에게 처음 듣는 것은 아니어서
잠깐 생각에 잠겼다.
'어떻게 하는지를 잘 모르겠어.'
이미 나와는 너무 오래되서 나를 어느 정도 이해하니까
내 얘기를 하라고 강요하는 말은 아니고
그냥 다른 사람들은 거리감을 느낄 수도 있겠다고,
내가 답답하지는 않냐고 물었다.
'외로워. 답답해.'
혹시 무슨 트라우마나
말 때문에 안 좋은 사건이 있었냐고 물었지만
딱히 기억나는 일은 없다고 했다.
사실,
퀸타렐리 아마로네를 마셔보지 않은 사람에게
와인병을 보여줘도 갸우뚱하는 것처럼
나는 내 얘기를 해 본 적이 없어서
그 답답한 이유가 말을 안 해서라고
아예 생각조차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럼, 나한테 지금 네 얘기 한번 해 봐.'
'어떻게? 진짜 몰라서 묻는거야.'
'그냥. 어렸을 때 일기 쓴다고 생각하고 말해 봐.
감정 같은 걸 깊게 얘기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아침부터 있었던 일 말해 봐.'
6시 45분에 눈이 떠져서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다 나열했다.
나는 정말 더듬더듬 무미건조하게 사건을 나열하는데
친구는 웃기도 하고 재밌다고 했다.
그리고 전화는 끊어졌다.
밧데리가 없어서.
나는 다른 차원의 시공간을 빠져 나오듯
차 문을 열었다.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
멀리서 들려오는 산 쥬세페 성당 종탑 소리,
중학생 무리들의 웃음 소리,
개들이 인사하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카페까지 가는 발걸음이 가벼웠는데
심난한 마음을 어딘가에 버려서 그런 것 같았다.
카페에서 핺드폰 충전을 하고 보니
아까 2시간이나 넘게 통화를 했다.
친구가 보낸 카페에 잘 가라는 카톡이 하나 와 있었다.
나도 답장을 보냈다.
'오늘 말하려고 전화했는데, 말해서 좋았어.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