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와인바가 생겼다는 말을 들었다.
이 지역의 어지간한 와인바는 다 가보았기 때문에
약간의 도장깨기처럼 한 번은 가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메인 도로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 위치하기 때문에
일부러 찾아가지 않는 이상
우연히 발을 들이기에는 힘든 곳이었다.
삐그덕거리는 나무 문을 열고 들어가니
켈빈 값이 낮은 오렌지 빛의 어두스름한 조도가 편안하게 나를 맞았다.
대서양을 표류하는 향신료를 나르던 배에서 사용하던 기름불 램프가 이런 느낌이었을까.
선내처럼 작은 공간도 나를 안정시켜주었다.
밤눈이 안 좋은 나는 안경을 쓰고
왼쪽 벽을 빼곡히 채운 와인 리스트를 살펴보았다.
이탈리아 외 와인이 많이 있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몇몇 맛이 보증되는 와인들이 눈에 들어왔지만
추천해 주는 와인을 마셔 보고 싶었다.
평일 저녁이라 북적이지는 않았지만
사람들이 적당히 포진해 있었다.
벽을 바라보는 바 형태의 테이블과 벽에서부터 길게 뻗은 나무 테이블 한두 개가 전부였다.
오래된 느낌의 공간이었는데
벽에 간간히 배치된 액자들은 굉장히 모던했다.
문과 마주한 가게의 정면에 낮은 나무 테이블이 있었고
큰 블랙 얼음바스켓에는 여남은 개의 화이트와 스파클링 와인들이 꽂혀 있었다.
그 옆에는 마뇽이 섞인 레드 와인들이 질서 없이 놓여 있었다.
별다른 표시나 조명이 없었기 때문에
이 공간을 조금 둘러 본 후에서야
테이블 뒤에 서 있던 사람이 서버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처음인데, 어떻게 주문하죠?
- 아, 제가 자리로 가겠습니다.
조금 후 건장하지만 선해 보이는 인상의 그가 웃는 얼굴로 나타났다.
- 어떤 와인을 드릴까요?
- 저기 와인들 몇몇은 마셔보긴 했는데, 좀 특별한 걸 마시고 싶네요.
하지만 맛있는 걸로.
- 그럼 이 쪽으로 오세요. 맛 보시게 해 드릴게요.
내가 원하는 맛을 얘기했고, 그는 귀신 같이 그런 와인을 찾아 주었다.
- 드셔 보세요. 괜찮나요?
다음 와인은 마셔 볼 필요도 없이 나는 그 와인을 마시겠다고 했다.
- 그럼 따라서 가져다 드릴게요.
자리에 앉아 그가 와인을 따르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마뇽에서 칠흙 같은 액체가 또로로 나와
라스트 오퍼의 클레어의 뒤꿈치처럼 이 장소와는 어울리지 않는
우아하고 부드러운 와인잔 벽을 따라 출렁이다
본연의 자줏빛을 비추었다.
- 맛있게 드세요.
그 후로는 어떤 음악이 흘렀는지, 옆 좌석에 어떤 사람들이 앉았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기대 없이 소개팅에 나갔는데 그 날의 내 기분을 너무나도 잘 이해해 주는 사람을 만났다.
그래서 다른 것들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