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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일을 제대로 하고
돈을 벌려면 그런 생각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어."
일이나 투자에 관해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나의 오래된 유일한 친구는 언젠가 문래동 허름한 바에서
카베르네 소비뇽을 들이키며 말했다.
"나도 너랑 같은 사람이잖아.
우리 같은 사람들을은 싫어하는 게 너무 많아.
눈에 거슬리는 것도 너무 많고.
근데, 투자하고 일할 때는 그런 생각을 배제해야 하는 것 같아.
나도 그런 생각하는 아저씨들, 뭐 그런 사고 방식 가진 아줌마들
숨소리만 들어도 진절머리 쳐지지만,
우리가 그 사람들하고 친구할 건 아니잖아. 그렇게 생각해야지."
그리고 건배를 하고 잔을 비웠다.
탄닌이 쓰다. 허브 향이 코를 찌른다.
어릴 때는 좋은 것이 분명하여 원하는 것은 무조건 쟁취하려는
어떻게 보면 긍정적이고 진취적인 아이었는데
좌절과 챙피를 오가다 보니
어느새 좀 다르게 흑화되었다.
이젠 나는 싫은 것만 분명한 아줌마가 되어 있었다.
나의 성공을 빌기보다는
남의 실패는 비는 사람이 된 것 같아서 조금 입이 쓰다.
같은 이유로 나는 내가 확신하는 것에
올인하지 못 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기회는 지나가고 나서야
그것이 기회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때 나에게 다정했던 그 사람처럼.
객관적인 눈을 갖기 위해서는
돌아가는 상황을 명확한 근거와 자료를 통해
이해해야 하고, 그래야 자기 확신이 생기고,
그 상황 속에서 나의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크리스티앙, 너는 어떻게 그렇게 겁없이 이것저것 도전할 수 있니?"
"글쎄, 우리 부모님은 둘 다 사업을 하셨어.
괜찮은 게 있다 싶으면 일 년 동안 무조건 투자를 하는 거지.
그래서 잘 되면 좋은 거고, 안 되면 어쩔 수 없잖아. 뭐 다른 걸 도전하면 되지."
"우리 부모님은 그런 쪽하고는 거리가 멀거든."
모두가 입을 모아 세상 좋은 사람들이시라고 했다. 그리고 사실 그러했다.
나의 부모님.
그럼에도 나는 나의 그 보드라운 껍질을 깨고 탈출하고 싶었다.
이불 속에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굴을 파고,
기억들을 애써 찢고 왜곡했다.
우물 안 개구리는 정작 우물 밖으로 나왔는데
이제 어디로 가야 할 지를 모르겠다.
차라리 다시 저 깊은 우물 안으로 들어가는 게 나을까.
그럼에도 아직은 인생이 도전이라고 생각해 본다.
매 순간이.
사람들을 만나러 나가는 발걸음 하나하나에도 얼마나 많은 생각이 오가는지.
얼마나 대단한 다짐으로 현관 문을 여는지
차 속에서 다시 집으로 돌아갈까를 몇 번이나 생각하는지.
아직도 뒷통수가 얼얼하다.
그들이 처음부터 일부러 내 뒷통수를 갈기려고
등 뒤에 각목을 숨겨 왔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서로의 허용 기준이 달랐겠지.
그리고 그런 하찮은 기준과 태도를 가진 사람들은
지난 밤 잠깐의 폭우에 익기도 전에 쉽게 떨어져버린
조마막한 푸르딩딩한 떫은 감 같은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람의 입맛이란 참 간사하다.
우리에게 익숙한 멸치 국물로 맛을 낸 된장찌개가
세상 최고로 맛있기도 하고
처음 접하는 무화과 잼을 곁들인 꺄쇼 치즈에 매료되기도 한다.
계속 이러저러한 팔랑기나나 카리칸테 같은 것들에만 심취해 마시다보면
바다나 화산의 미네랄리티가 없는 와인은 시시하게 느껴지지만
그것은 위험한 생각이다.
부르고뉴 알리고테도 다뉴브 강의 리즐링도
내 친구가 노래를 부르며 나무 막대로 대충 저어 만든 말바시아 한 잔도
즐길 줄 아는 여유가 있는 사람이고 싶다.
그렇게 즐거움의 폭이 넓은 사람이고 싶다.
나를 위해.
<와인과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