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는 천주교 국가이다.
그렇다고 다들 신실한 신자들은 아니다.
거의 젊은 친구들은 대부분 성당에 나가지 않는다.
또 늙었다고 성당에 주말마다 가는 사람도 거의 보지 못 했다.
그냥 유아 세례를 받았기 때문에 그냥 천주교인일 뿐이다.
신부님이나 천주교 조직에 대한 신뢰도 낮은 편이다.
신실함으로 본다면
미국 개신교나 한국 기독교인들이 훨씬 충성도가 높지 않을까.
어제가 부활절이었다.
바로 이 쇼윈도 카톨릭의 나라에서는
부활절 바로 다음 날인 월요일까지 휴일이다.
부활절은 입춘 후 첫 보름날로
종교적 의미로 달걀 모양의 초콜릿을 선물하거나
새로운 봄이 시작되었다는 의미로
간단한 피크닉이나 짦은 여행을 간다.
오랜만에 늙은 차의 루프 오픈 키를 누르니
삐걱삐걱 잘 말을 듣지 않았다.
그래도 비가 오지 않아 다행이었다.
외국에 사는 나는 국경을 두 개나 넘어
진짜 외국으로 향했다.
뭐, 그런 거다.
한국에서 먹는 엄마 김치가 진짜 김치고,
여기서 내가 만든 건 매운 배추 샐러드 같은 것.
여름 같은 햇볕에
겨울 같은 바람이 불었다.
크로아티아의 작은 항구 마을은
그 전에도 몇 번 와 본 곳이었다.
그 때 좋은 기억이 있어서 다시 와 보았다.
시내 바닷가 바로 앞의 전망 좋은 테라스에 앉아
날아다니는 빵을 잡아 민물가재 스튜에 찍어 먹었다.
메두사처럼 회오리치는 내 머리카락과 같이 먹은 것 같아서
입을 닦으려고 보니
냅킨은 이미 어디론가 날아가고 없었다.
크로아티아는 아직 유로화를 사용하지 않는다.
신용카드를 사용하기에도 좀 불안한 나라이다.
맛 좋고 서비스 좋고 경치까지 좋았던
식당에서 신나게 바가지를 당하고
경쾌하게 바다를 따라 길을 걸었다.
골목으로 들어서니
바람을 건물로 막고 있는 아늑한 작은 정원이 눈에 들어왔다.
고양이들이 좋아할 것 같은
햇볕이 가득찬 곳이었다.
마침 바가 있어
나도 졸고 있는 비둘기들 사이에
몸을 앉혔다.
식후주와 에스프레소를 시켰는데
러시아인 같은 종업원이
작은 메추리알 모양의 초콜릿을 주었다.
그러고 보니,
올해 처음 받는 부활절 초콜릿이었다.
단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먹지는 않았지만
단 것을 먹은 것처럼 기분이 좋아졌다.
낯선 나라의 은신처에서
잠깐 눈을 붙였다.
좋은 꿈을 꿀 수 있을 것 같았다.
조금 있으니
바람을 막아 주던 건물은
적외선 치료기 같던 햇볕을 가려 싸늘한 그늘을 만들었다.
일어나 다시 바다를 따라 걸었다.
동네를 걸을수록 예전의 기억들이
바닷가의 작은 게처럼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주성당과 종탑이 있는 주광장의
노천 카페에 잠시 앉았다.
직접 만든 허브 담금주가 있다고 해서
한 잔 주문하였다.
예거마이스터 짝퉁 같았지만 뭐 상관없으니까.
다들 내일까지 하룻밤을 머무는지
돌아가는 입국 심사 줄은 별로 길지 않았다.
해가 지니 겨울처럼 추워서
루프를 닫았다.
도로 양 옆의 포도 나무들은 여차하면
잎을 벌리려고 벼르고 있었다.
갑자기 추워진 몸에 불닭볶음면이 먹고 싶어서
역 앞 중국인 가게에 갈까 하다가
대충 레몬과 올리브유를 뿌린 그린 샐러드를 해 먹었다.
시간을 보니 한국에 전화를 걸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 같아
전화를 잠깐 쳐다보다 티비를 켰다.
온통 부활절 이야기었다.
뭐 별 상관없으니까,
소파에 몸을 묻고 담요를 덮자 곧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