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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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들어간 카페는 무언가 이상했다.


곧 철거될 오래된 작은 상점들이 이끼처럼 자리 잡은 그곳을

우리는 그냥 지나쳐 걷고 있었다.


"저기 괜찮아 보이지 않아? 들어가 볼래?"

"그래."



건물 자체는 주변과 같이 오래되었지만

층고가 매우 높았고

통유리로 둘러싸인 3층짜리 그 카페에 들어갔을 때

나는 그 공허함에 어떤 친숙함을 느꼈었던 것 같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그 공간은 매우 비어 있었다.


1층은 심지어 커피를 준비하는 공간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분명 그 빈 공간에 의자를, 테이블을 놓고 싶었을 터인데도.



디카페인이 있냐고 물었고

단발머리의 청년은 멋쩍게 없다고 대답했다.


적당한 커피를 주문하고


2층으로 올라갔다.

창가로 앉아볼까 눈을 돌리니

창가 바로 앞에 좌석이 아닌 작은 정원이 버티고 있었다.


2.50m *2.50m 정도의 정사각형 크기의 대리석 마감이었는데

작은 바위 하나와 잘 정돈된 작은 소나무 하나가 전부였다.


테이블들은 굳이 신경 쓰지 않으면 옆 사람의 대화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띄엄띄엄 배치되어 있었다.

의자는 홀수로 놓여 있기도 했다.

그 외에 다른 특별한 인테리어는 없었다.


전혀 채워지지 않은, 채울 생각이 없는 그 공간에 들어와 있는 내가

뭔가 초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참 이상하다.

이탈리아에서 얼마나 한국 음식이 먹고 싶고,

한국 친구가 보고 싶은지 모른다.

그런데

막상 한국에서 간장게장 등딱지에 이천 흰쌀밥을 비벼 먹고

수십 년 된 친구를 만나면

그냥 이내 일상처럼 느껴진다.

백화점에 아크릴 수염을 붙이고 앉아 있는 산타할아버지를 드디어 직접 만난 느낌 같은 것.


이렇게나 오랜만에 만나는데,

응당 그간 하고 싶은 이야기가 얼마나 많아야 할 텐데,

막상 만나면

사실 관심도 없는 연예인 사생활이나 커피 원두 이야기나 하고 있는 것이다.


내 머릿속의 상상이란 것이 얼마나 크고 어여쁜 비눗방울 같은 것인지.




친구와 자리를 잡고 앉아

북유럽풍 액자도 어떤 친절한 지시문도 시럽 테이블도 없는 공간을 잠깐 부유하다 보니

내 마음을 여기에 잠깐 꺼내 놓고 말려도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있지, 학교 다닐 때 학기 초에 다들 자기 짝을 만들잖아.

근데 그게 친구들을 좀 알고 나서 자연스레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거의 생존 본능처럼

등교 첫날, 백화점 세일 시작처럼 순식간에 동이 난단 말이지.

그리고

결혼도 아닌 것이 중간에 바뀌는 일은 거의 없다는 거야.

심지어 실제 같이 노는 친구들 따로 공식적인 짝은 따로 있는 경우도 있었어."


나는 무리에 못 끼는 성격도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정해진 짝이 있는 애도 아니었다.

내가 잘 알지도 못하는 누군가와 반영구적인 짝이 되기도 싫었고

동시에 정해진 짝이 없어서 불안하기도 했다.

그렇게나 깔깔대고 뒹굴고 함께 놀던 친구들도

수학여행 버스를 타야 한다던지 두 명씩 줄을 서야 한다던지 하면

다들 자석처럼 신속하게 자기 짝을 찾아 미끄러져 나갔다.


어디서 들어 본 것 같은 처음 듣는 음악이 공간을 잠식하고 있었고

잠깐, 내가 오만했었을까 생각했다.



친구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했고

그래서인지 간간히 내가 혼이 나고 있는 건 아닌가 생각되었지만

사소한 먼지덩이 같은 감정들은 이내 높은 천장으로 흩어져 사라졌다.



화장실에 가니 특급 호텔 어메니티에나 있을 핸드워시가 있었다.

손을 씻고 손에서 은은히 풍기는 라벤더와 로즈마리에 약간의 시트러스 향이 섞인 냄새를 맡으며

훵한 이 공간에서 만족이 충만함을 느꼈다.



그리고 우리는 고기를 먹고 맥주를 마시고 소주를 마셨다.

인적마저 드문 일요일 밤 종로 4가에서 2가까지 걸으며

할머니들처럼 여기가 이렇게 바뀌었네 저렇게 바뀌었네 틀린그림찾기를 하며 조금 웃다가

그래도 그대로여서 좋고 계속 안 바뀌면 좋겠다고 맞장구를 쳤다.


전철 막차를 탔고 전철칸에는 나를 포함 단 세 명만이 서로 약속한 듯 일정한 간격을 두고 앉아 있었다.


나의 것이란 무엇일까.

나의 편이란 무엇일까.

이제 나보다 키가 큰 친구의 딸, 결혼반지, 조카, 외할머니 산소, 엄마 아빠, 키스

이런 생각의 파편들을 주섬주섬 주워 담다가

하마터면 내릴 역을 놓칠 뻔하였다.


역 계단을 차근차근 밟고 출구로 나오니

바람이 불지 않는 겨울의 밤이 참 좋았다.

겨울의 한낮을 좋아하는 이유는 차갑고도 따뜻해서인데

오늘 밤은 공기의 촘촘한 밀도가 느껴져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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