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차를 사도 될까요?


- 지금까지 다녔던 나라 중에 어디가 제일 좋아?

- ?


- 음식 중에 뭐가 제일 좋아?

- ??


- 친구 중에 누구랑 제일 친해?

- ???


여러분은 이상의 질문으로 한국인과 이탈리아인을 구별할 수 있다.

(두유 노우 김치? 두유 노우 김연아? 아니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저런 질문 자체를 좋아하지 않는다.


비교해서 등수를 매기는 것. 특히 본인의 취향이나 선호에 일차원적 기준으로 등수를 매기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한다.


3 개의 질문을 이탈리아인에게 던지면, 아마 이런 대답을 듣게 될 것이다.


- 나라마다 각자 다른 개성이 있어서 어디가 제일 좋다고 말하기가 어려워.


- 음식 다 좋아하지. 근데, 어떤 음식? 디저트는 디저트대로 맛있고, 피자는 피자대로 맛있는 게 있고, 또 스파케티도 우리 할머니가 해주는 건 맛있는데 식당에서 하는 건 별로 안 좋아하니까. 뭐 딱 집어 하나만 말하기가 어렵네.


- 질문이 그게 뭐야? 친구 중에 누구랑 제일 친하냐니...

왜 가장 좋아하는 친구 하나를 가려내서 뽑아야 하는데?



이탈리아 사람들은 수학적 수치가 아닌 것에 대해

서로 비교해서 그 우열를 저울질하는 것에 죄책감마저 느끼는 것 같다.

또, 본인이 선호하는 것에 어떤 한정된 울타리를 만드는 것도 답답해 한다.

오늘 좋지만, 내일 싫을 수도 있으니까.


한국인의 핏속에 열정적으로 흐르는 비교와 등수 매기기를 제외하고는

이탈리아인과 대화 하기가 힘들 정도이다.


이탈리아 사람들과 얘기하다보면

'uno dei miei preferiti[우노 데이 미에이 프레페리띠] 내가 좋아하는 것 중 하나'

라는 표현을 많이 듣게 된다.


대신 우리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

이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그리고, 'depende[디펜데] 경우에 따라'라는 말도 자주 사용하는데,

얼마나 다양한 상황과 조건들이 있는데, 단 하나로 한정지을 수 는 없다는 말이다.






지금까지보다 더 이상한 사실은 바로 다음부터이다.


- 우리 어디갈까?

- ...


- 자, 메뉴 골랐어?

- ...


- 그래서 내가 좋다는 말이야, 싫다는 말이야?

- ...



그렇게 딱부러지게 비교하고 등수 매기기를 좋아하는 한국인에게

정작 본인 의사로 스스로 결정해야하는 질문을 던지면?

우리는 벙어리가 된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각각의 개성을 존중한다.

존중이란 떠받는 것이 아니라 그 존재 자체를 인정해 주는 것이다. 그리고 각자 자신의 고유성을 지키는 걸 당연한 권리이자 의무라고 생각한다. 누구도 그 영역을 침범할 수 없으며 특별한 하나의 기준으로 그 우열을 결정하거나 판단할 수 없다.

토끼와 고양이 중 누가 더 귀엽냐를 누가 판단할 수 있다는 말인가.

한국 아이들에게 어른들이 자주 던지는 이런 질문들을 아마 이탈리아 아이들에게 던지면

나는 아마 이상한 어른 취급을 받지도 모른다.

그 비슷한 예로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가 있다.

- 내가 어릴 적 삼촌집에 놀러가면 가끔 동네를 어슬렁 거리던 까만색 고양이를 만지던 기억이 나. 그 고양이는 참 귀여웠어.



반면, 한국인들은 아직도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를 굳게 믿고 있다.

우리는 서로의 공통점을 발견하며 안위를 느끼는 사람들로 양산됐다.

이를 위해서는 독보적인 하나의 기준이 필요하고, 모두 그 기준을 부여잡으려 안간힘을 쓰며 그 누구도 낙오되지 않으려고 노오력한다.

한국인은 토끼와 고양이 중 누가 더 귀엽냐를 말할 수 있는 종족이다.

고양이는 틀림없이 토끼보다 더 귀엽다. 그렇지 않고서야 왜 엄마 친구 딸도 고양이를 키우고, 옆집 아저씨도 고양이를 키우고 내가 좋아하는 가수도 고양이를 키우겠는가. 나도 세상에서 제일 귀여운 고양이를 키우고 싶다.

그런데, 내가 고양이를 진짜 좋아하는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그리고 덧붙여 단언코 토끼는 안 귀여울 것이다. 나는 토끼 키우는 사람을 아직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번 사안의 문제점은 비치타월과 돗자리에서도 발견된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야외에 앉을 때 비치타월을 사용하는데, 그게 딱 1인용이다. 오로지 그의 개인 공간인 셈이다. 다른 사람의 비치타월에 엉덩이라도 한 짝 붙이고 싶으면 허락을 구해야한다. 그렇다고 혼자 노는 것은 아니다. 각자의 비치타월을 붙이면 따로 또 같이 우리의 공간이 만들어지는 셈이다.


반면, 한국인은 돗자리를 사용한다. 돗자리에는 12명도 앉을 수 있다. 내 개인의 공간을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라고 정하기가 애매하다. 뭐 하여튼 같이 어울려 노니까 흥겹다. 그런데, 그 돗자리에 나 혼자 앉아있기는 또 이상하다. 무언가 외롭고 부족해 보인다.



한국인들은 내가 좋아하는 것과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구별하지 못한다.

보통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내가 좋아하는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다.

그리고 또 반대로

본인에게 괜찮은 것은 당연히 다른 사람들에게도 괜찮을 것이라고 멋대로 생각해버리기도 한다.

예를 들면, 성형외과 광고에 나올 것 같은 양산형 여자들에 반사적으로 열광하고,

내가 너를 좋아하는데 왜 너는 나를 좋아하지 않은지 이해하지 못하고 상대 집까지 쫓아가 10번 고백하면 이제 그만 튕기고 날 좋아하겠지 멋대로 생각해 버리는 것들.



이탈리아인들은 다른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에 일단 별 관심이 없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고 있지만 그것을 공식적으로 우열을 정하거나 한정시키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생각한다.

어떤 음식이 제일 좋냐는 말에는 어물적거리지만, 식당에 가서는 내가 먹고 싶은 피자를 바로 주문할 수 있다. 또 우리 과에서 누가 제일 못생겼냐고 물으면 대답을 못하지만, 내가 관심없는 동기가 다가와서 맥주 한잔 하자고 하면 매몰차게 싫다고 말한다.

- 싫다고? 아, 내가 오해했었나 보네. 괜찮아. 내가 너한테 호의 있었다는 걸 단지 표현하고 싶었어. 오늘 불편했다면 미안해. 잘 가! 내일 수업에서 보자.





한 이탈리아인는 한국에 와서 가장 놀란 점이 돌아다니는 차 색이 거의 흰색, 회색, 검은색 밖에 없다는 것이었고, 또 소수 개의 특정 모델이 압도적이라는 것에도 놀랐다고 한다.

우리 단지에 수십 대의 차들이 있지만, 같은 차종에 같은 색의 겹치는 차는 단 하나도 없다.


누군가는 한국에서 파란색 차를 사면 나중에 중고로 팔 때 좋은 값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무난한 흰색을 사야한다고 했다.

나는 그가 아무렇지 않게 하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들을 수가 없었다.


- 내가 날마다 운전하는 차도 내 취향대로 골라 살 수가 없네. 존재도 알 수 없는 불특정 타인의 취향을 위해 내 차를 골라야 하는구나.



그리고 이 글을 마치며 확실히 느낀 점이 하나 있다.


- 역시 난 진정한 토종 한국인이구나! 이탈리아와 한국을 이렇게나 열심히 비교하며 쓰고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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