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감이지 말라고


어제 차를 타고 가는데 2차로 도로에서 반대편 차량이 불법 유턴을 했다.

그 트럭이 차를 돌릴 때까지 우리 쪽 차들은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몇 초 안되는 시간이었는데도 누군가 빵하고 경적을 울렸다.



[ 이탈리아 사람들이 다혈질이어서 시도때도 없이 빵빵거릴 것 같지만,

중북부 사람들은 자신의 차 경적소리가 뭔지도 모를 정도로 아예 사용하지 않는다.

물론 남부는 전혀 다른 나라 이야기이지만. ]



보통 한국 사람들 같으면 미안하다고 고개를 숙이거나 빨리 차를 돌려 나가려고 진땀을 빼겠지만,

이 트럭 운전수는 이탈리아 바디 랭귀지로 팔을 들어올리며 '어쩌라고'를 시전했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이런 게 있다.

자기 능력 밖의 불가항력에 대해서는 절대 사과하지 않고 미안해하지 않는다.



'내 트럭은 길고 길은 좁은데 어떡하라고. 지금 차 돌리는 중인거 안 보여? 나보고 더 어쩌라는 거야?'

가 이탈리아식 사고라면,


'아, 내가 어쩌다가 여기서 트럭을 유턴할 생각을 한거야. 저기 사람들 기다리는 거 봐. 어떡하지?'

가 한국식 사고인 것이다.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가장 우선은 자신의 감정이다.

한국 사람은 공공의 이익.



그래서 이들은 어떻게든 자신을 먼저 보호하려고 한다.


이탈리아인들은 자기합리화의 달인들이고 이들 사전에 후회란 없다.

- 그 때 그 상황에서는 그게 내 최선이었어! 어쩌라고!



한국 쇼핑몰 주인들은 택배기사 문제로 택배 배송이 늦어져도 고객님께 사과를 해야한다.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내 큰 탓이로소이다...'



얼마 전에 우리 옆 집이 인테리어 공사를 했다.

인부들이 엘레베이터에 보호막을 치고 자재들을 옮기긴 했지만, 그날 오후 엘레베이터를 탔더니 버튼 하나가 부서져 있었다. 평소 그 집이 좀 문제가 있었던 터라 이때다 싶어 남편에게 말했다.


- 나 이거 누가 고장낸 줄 알아.

- 누군데?

- 우리 옆 집!

- 옆 집이 왜?

- 오늘 인부들이 엘레베이터로 자재들 옮기고 공사했거든.

- 그럼 옆 집이 고장낸 거 아니지.

- 그 사람들이 고용했잖아?

- 어쟀든 옆 집이랑은 상관없지. 인부들이 고장낸거지.






옷가게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단추가 잘못 달려 교환하러가면


- 교환해 줄 옷이 다 팔리고 없네. 유감이야.



자신들이 잘못한 일이아니면 절대 미안하다고 하지 않는다.


대신 유감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는데, 그게 더 사람 미치고 환장하게 만든다.



유감이라는 말은

'내가 너한테 미안한 맘도 없고, 딱히 너한테 뭘 해주지도 않을건데. 아무튼 너 참 딱하게 됐다. 어떡하냐.'


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유감이라는 사람한테는 따지고 화를 낼 수 도 없잖으니까.



한국에서는 유감이라는 말은 유명인 공식 사과문 말고는 일상에서는 사용하지 않는다.

죄송합니다는 정말 많이 사용하는데.



예를 들어 피자 배달이 폭우로 늦어졌을 경우.


이탈리아 배달 기사:

유감입니다. 어쩔 수 없잖아요. 빨리 피자 받고 돈이나 내세요. 나도 다시 돌아갈 일이 짜증나니까.

눈치 없이 왜 비오는데 피자는 시켜가지고...


한국:

정말 죄송합니다. 다음부터는 이런 일이 없도록 만반의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네? 주문한지 30분이 지났다고요? 31분 40초... 그럼 무료네요.. 네, 맛있게 드세요. 피자가 좀 젖었죠...정말 죄송합니다.




그럼에도 이들도 미워할 수 없는 반전 매력을 가지고 있다.


한국에서 듣기 어려운 '실례합니다'는 얼마나 자주 듣는지 모른다.


상대의 의사와 허가를 물어보는

들가가도 되나요? 만져봐도 되나요? 봐도 되나요? 연락해도 되나요? 찍어도 되나요?

같은 질문들은 또 얼마나 예의 바르게 꼬박꼬박 물어보는지.




이탈리아는 나, 너가 철저하게 분리되어 그 각각의 개체를 존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반면,


한국은 그 경계가 모호하고 각자의 개인적인 감정보다는 전체의 규범이 가장 우선으로 생각된다.



한국에서는 착한 사람이 이탈리아에서 예의없는 사람이 될 수 있고

이탈리아에서 멀쩡하게 살던 사람이 한국에서는 쓰레기가 될 수 있도 있다.




어느 쪽이 낫다고 보지 않는다.

솔직히 이탈리아나 한국이나 도긴개긴이긴 하지만



나는 한국인이니까,

한국사람들이 조금더 자신의 감정을 보살폈을면 좋겠다.

우린 자기 자신인 자체로 당당할 수 있는 사람들이므로.



그리고, 이탈리아인들...

내가 부정맥이 있는 관계로 할 말은 많지만 이만 줄인다.

니들 덕분에 내가 참 강해졌어...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내가 좋아하는 차를 사도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