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내가 사는 이탈리아 도시에서 국제적인 큰 행사가 있어서 2주간 소믈리에로 활동했다.
정식으로 실내에서 서비스를 하는 것이 아니라 바다가 보이는 야외 스탠드에서 진행되는 박진감 넘치는 행사였다.
이탈리아 시골(=우리 동네!) 사람들만 보다가 여러나라 각지에서 온 사람들과 만나고 이야기하는 좋은 기회였긴 한데,
불현듯 예전에 처음 이탈리아에 왔을 때 작은 아빠가 하셨던 말씀이 생각났다.
이탈리아 무역 관련 일을 하시는 작은 아빠가 우리 동네에 직접 와보시고 남기신 말씀.
- 여기 한국인들 좀 있냐?
- 거의 없죠.
- 동양인들은?
- 별로요.
- 그게 낫다.
우리 스탠드에는 미국인 등 한국인들이 많이 사는 나라 사람들이 꽤 방문했는데,
하나같이 나를 보고 어디에서 왔냐고 다짜고짜 물어봤다.
South Korea라고 하면 나오는 대답이 한결 같았다.
- 싸우스 코리아! 내가 잘 알지!
- 나 잘아, 김치 엄청 좋아한다고.
- 너네 야구도 하고, 음식도 맛있잖아. 내가 잘 알지!
- 나 김치 땅에 묻는 것도 안다고. 내가 왜 모르겠니, 코리아!
그렇다... '아이 라이크 김치' 까지는 좋은데 응당 내가 '와우! 리얼리!' 해주길 바라는 그 눈빛은 좀 부담스러웠다.
나를 만나기 전 만났던 한국인들에게 도대체 어떤 세뇌를 받았단 말인가.
한국인들은 외국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어하는 경향이 유독 강하다.
비정상회담은 좀 다르다 치더라도 나영석 피디가 했던 블라블라 식당 류, 블라블라에서 먹힐까 류, 비긴 어게인 같은 프로그램이나 영국남자 유튜브에 열광하는 한국인들이 꽤 되니까.
그래서, 한국을 알거나 김치를 좋아한다는 외국인만 봐도 우리 한국인들은 둥게둥게 해주고 싶어서 안달이 난다.
그리고 그런 한국인들을 몇 번 만나 본 외국인들은 이런 우리의 습성을 잘 알고 있다.
그런고로 요즘에 서울 종로나 인사동 등 외국인들이 많이 가는 길거리에 가면
신체 건장한 노란 머리의 젊은 외국인 걸인들이 꽤 보이는 것이다.
노래를 하는 것도 아니고 춤을 추는 것도 아니고 그냥 앉아서 한국어로 또박또박 적은 이런 푯말만 들고 있다.
- 안녕하세요. 세계를 여행하고 있어요. 돈이 없어요. 도와주세요.
그럼, 우리 한국인들은 '아이고, 이 기특한 외국인이 한국말을 정성스럽게도 써놨네'하면서 쉽게 지갑에서 돈을 건네는 것이다.
저기요, 요즘 한국 시골가면 일손이 없어서 하루 일하면 먹여주고 돈도 두둑하게 준다고 들었습니다만.
행사 날로 다시 돌아와서.
나는 안타깝게도 정 넘치는한국인이 아닌지라 와인을 더 부어 달라는 그들의 눈빛을 외면했다.
미국에 가서, '와우! 나 맥도날드 햄버거 정말 좋아해! 나 자유의 여신상도 가봤어!' 한들,
이탈리아에서 '있지, 나 이탈리아 피자 너무 좋아하잖아! 이탈리아 축구도 잘하잖아' 한들!
그리고, 그간 탐탁지 않아 했던 여기 시골 사람들이 그리워졌다.
싸우스 코리아에서 왔다고 하면 순간 벙어리가 되는 사람들.
- 싸우스 코리아? 어디? 무엇? 읭?
인종차별보다 더 기분 나쁜 것은 시혜적인 태도인 것 같다.
'내가 너희 나라 이 정도 아는데 고맙지 않니? 대단하지 않니?'라는 태도는 정말이지
숨겨왔던 나의 동물적 으르렁을 단방에 깨운다는 말이지.
국민 총체적으로 자존감이 상실된 싸우쓰코리안들에게 조의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