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코와 나 5
요코가 입을 열었다.
- 이번에 우리 어학원에 새로 들어온 끼아라 알지?
- 응, 저번에 말했잖아.
- 그 친구 남자친구 부모님이 레즈비언이시거든.
- 잠깐만, 여자랑 여자가 애를 어떻게 낳아?
- 그건 잘 모르겠어. 아무튼 한 분은 영국인이고, 한 분은 이탈리아인인데 저녁 식사에 초대 받았어.
한국에서라면 외화에서나 봄직한 일이 이탈리아에서는 이렇게나 내 옆에서도 버젓이 일어난다.
요코와 무슨 와인을 가져갈까 함께 고민했고,
결국은 어떤 식사가 나오는지 모르니까 식전주로 마실 수 있는
프란챠코르타나 트렌타 DOC을 가져가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며칠 후 요코와 다시 만났다.
- 그날 저녁 어땠니?
- 나 있지 그 사람들처럼 늙고 싶어. 정말 멋졌어.
- 왜?
요코의 전 남친은 패션 명품 딜러였고,
요코도 밥을 굶는 한이 있어도 사고 싶은 장식품은 사는 친구였다.
그날 저녁, 아드리아해가 보이는
시내 중심부에 위치한 웅장한 오스트리아식 건물 5층에 들어섰을 때,
요코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문을 열고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톤 다운된 파스텔 컬러가 어우러진 벽과 기하학적이면서도
전통적인 느낌의 카페트와 파비멘토,
영국식 장식품과 이탈리아식 고가구가 어우러진 환상적인 인테리어에
압도당했다고 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그들과 함께 있으면서 느꼈던 편안함에
'나도 늙으면 저런 할머니가 되어야지' 라는 마음을 먹었다고 한다.
칠십이 넘은 백발의 노부부는 단정하면서도
생동감있는 실크 소재의 원피스와 벨벳 스커트를 입고 있었다.
차갑지도 과하지도 않게 맞아주시는
그 분위기가 좋았다고 한다.
음식은 이탈리아 식이었지만 식기는 모두 영국산이었다고 했다.
생선과 야채를 사용한 가벼운 요리었지만,
세 시간이 넘게 함께 이야기하며 식사했다고 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전혀 세대 차이가 느껴지지 않았다고 했다.
보수적이지도 고리타분하지도 않은
그들과 이야기하는 것이 즐거웠다고 한다.
모든 주제에 열려 있는
그들의 태도에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마치 고등학교 친구와 수다 떠는 것처럼
어떠한 위화감도 느낌 수 없었다고 한다.
한 분은 이탈리아 내 영국계 회사에서 일을 하다 이제는 퇴직하셨고,
한 분은 이탈리아 시립 박물관에서 일을 하셨다고 했다.
함께 초대 받았던 아들과 아들의 여자친구인 끼아라 또한
부모님과 오래된 친구처럼 지내는 모습에
요코는 본인의 부모님을 생각했다고 했다.
- 내가 말했지?
우리 아빠는 집에 오면 술을 마시고 엄마를 때렸어. 나도 많이 맞았지.
엄마는 우리와 있을 때는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었거든,
장난도 많이 치고 농담도 많이해서 우리 넷은 웃음이 끊일 일이 없었어.
그런데 아빠만 나타나면 정말 지옥 같았지.
그때 엄마한테 왜 이혼하지 않냐고 물어봤거든 그랬더니
가족은 죽어도 함께 사는 거라고
이렇게 참고 살아도 가족이니 좋다고 했어.
나는 정말 이해가 가지 않았고
지금도 사실 이해할 수 없어.
엄마는 5년 전 간암으로 돌아가시고
나는 이제 아빠하고는 아예 연락도 안 해.
어디에서 뭘하고 사는지 관심도 없어. 정말.
넌 결혼은 책임감이라고 했지?
인생을 거는 약속이라고 했지?
그래서 그럴 자신이 없으면 결혼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잖아.
넌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니?
난 이혼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가족? 그런거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해.
사람은 신이 아니야. 마음은 시시각각 변하지. 우리는 실수 투성이야.
누군가 고통받는다면 그곳이 어디든 박차고 나와야 된다고 생각해.
우리는 날마다 즐거움을 느끼기 위해 사는거야. 그 외의 삶의 이유는 없어.
모두가 죽은 삶을 부여잡고 함께 모여있는 가족이라는 거? 무슨 의미가 있을까?
요코는 잠시 밖을 바라보더니 조금 심각했다 싶었는지 웃으며 나에게 말했다.
- 정말 웃기지? 우리가 일본이나 한국에 있었으면,
내가 어떻게 저런 사람들과 식사를 했겠어.
우리나라나 너희 나라나 우린 눈치 보기 바쁘잖아. 있지, 난 그게 정말 싫어.
너나 나나 우리가 이 생면부지의 이탈리아라는
나라에서 홀홀 단신으로 살면서 배워갈 수 있는 거라곤
오픈 마인드 말고 뭐가 있겠니.
레즈비언, 아시안, 백인? 무슨 상관이야.
적어도 우리는 마음을 열고 사는거지.
나는 집으로 돌아오다 아직도 불이 켜진 동네 바로 들어가
몰리나리 한 잔을 시키고 창문 옆 구석 바에 자리를 잡았다.
은은한 백열등이 비추는 광장의 베테치아식 성당이
공기의 습도때문인지 뿌옇게 보였다.
바 안에는 리까르도 고챤테의 Il mio rifugio(나의 휴식처)라는 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동네 주정뱅이 몇이 바텐더와 무슨 얘기인지 머리를 맞대고 있었다.
몰리나리를 서서히 들이켰고
오른쪽 어금니까 흔들거리는 것 같았지만,
이내 내 기분 탓이라는 걸 알았다.
집 앞에서 우리집 창문을 올려보니 역시나 불이 꺼져있었다.
차고도 비어 있었다.
현관을 열고 들어가니 익숙한 어둠이 나를 반겨주었다.
안녕! 어둠.
넓은 침대 한 켠에 몸을 뉘였다.
침대란 참 이상하다.
보고있을 때는 모르겠는데,
혼자 누워보면 굉장히 훵하게 느껴진다는 말이지.
괜한 콧음음이 나 몸을 뒤척이다
이내 금새 잠이 들었다.
몰리나리 때문이겠지.
그 날 밤 나는 아무런 꿈도 꾸지 않고 깊은 잠을 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