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0월 25일

와.

올해 5월 10일이 마지막 일기였으니

5개월하고도 15일 만에 다시 끄적이는 일상이다.


5월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나 확인해 보려고

캘린더를 열어보려고 했으나, 핸드폰 밧데리가 없어서 꺼져 있다.


기억으로는 6월 초까지 큰 프로젝트가 있었고,

잠도 충분히 못 잘 정도로(나에게는 몹시 중요한 사안)

바빴고(흔한 핑계. 그나저나 아직 결제도 안 들어왔네),


그 후에는 어울리지도 않는 여행이다 뭐다

휴가다 뭐다 해서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플랫폼을 바꿔 보네 어쩌네 하다가

결국 다시 돌아온 브런치. 안녕.



이탈리아의 가을은 한국의 가을에 비하면

꽤 고독하고 쓸쓸하다.

그러니까 그 계절 자체가 그렇다는 말이다.


10월이면 추적추적 끝도 없이 내리는 가을비가 시작되고

그 때문에 빌라 자취방 욕실 같은 차갑고 진득한 습기가 몇 주나 지속된다.

바닷가 지역은 거기에 휘몰아치는 바람이 불어 을씨년스럽고

내륙이나 산간은 정체된 공기에 짙은 안개가 끼어서

애거서 크리스티나 제임스가 딱 좋아할 배경이 완성된다.



이렇게 온도나 습도, 그리고 조도가 변하는 환절기가 되면

나는 갑작스럽게 땅 위로 올라와버린 두더지처럼 맥을 못 춘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피곤하고

아무것도 할 생각도 없고

아무것도 나를 도와 줄 수 없다.


비 맞은 스펀지마냥 바닥에 철퍼덕 할 수 밖에 없는데

올해는 나를 책망하지 않고 그냥 그렇게 내버려 두기로 했다.



꾸역꾸역 아쉬탕가 수업을 가는 것이 전부였다.

내가 좋아하는 장도 볼 수 없어서 부탁을 했어야 할 지경이었다.



저번 주에는 약간 정신이 나는 것 같아서

일부러 소믈리에 협회 일을 무리하게 잡았다.


그제는 밀라노의 무슨 파티까지 참석하고

돌아오자마자

다시 또 협회 워크샵에 참석했다.



아마 일부러 미리 약속하지 않았다면

나는 이상의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약속했으니까 지켜야 하니까

어떻게든 꾸역꾸역 하는 거다.

그렇지 않으면

깊이조차 가늠할 수 없는 내 내면의 음침한 다른 차원의 홀로

빠져들 것 같아서.





오늘은 간만에 해가 났다.

신나하며 서둘러 밀린 빨래를 했다.

테라스에서 빨래를 널며

작은 새 소리, 개 소리, 갈매기 소리 같은 것을 들었다.

손 등에 닿은 노란 햇볕이 엄마의 손길처럼(엄마와 손 잡은 적 없음) 따사로웠다.



그나저나 그 밀린 결제만 들어오면 완벽할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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