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올해 5월 10일이 마지막 일기였으니
5개월하고도 15일 만에 다시 끄적이는 일상이다.
5월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나 확인해 보려고
캘린더를 열어보려고 했으나, 핸드폰 밧데리가 없어서 꺼져 있다.
기억으로는 6월 초까지 큰 프로젝트가 있었고,
잠도 충분히 못 잘 정도로(나에게는 몹시 중요한 사안)
바빴고(흔한 핑계. 그나저나 아직 결제도 안 들어왔네),
그 후에는 어울리지도 않는 여행이다 뭐다
휴가다 뭐다 해서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플랫폼을 바꿔 보네 어쩌네 하다가
결국 다시 돌아온 브런치. 안녕.
이탈리아의 가을은 한국의 가을에 비하면
꽤 고독하고 쓸쓸하다.
그러니까 그 계절 자체가 그렇다는 말이다.
10월이면 추적추적 끝도 없이 내리는 가을비가 시작되고
그 때문에 빌라 자취방 욕실 같은 차갑고 진득한 습기가 몇 주나 지속된다.
바닷가 지역은 거기에 휘몰아치는 바람이 불어 을씨년스럽고
내륙이나 산간은 정체된 공기에 짙은 안개가 끼어서
애거서 크리스티나 제임스가 딱 좋아할 배경이 완성된다.
이렇게 온도나 습도, 그리고 조도가 변하는 환절기가 되면
나는 갑작스럽게 땅 위로 올라와버린 두더지처럼 맥을 못 춘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피곤하고
아무것도 할 생각도 없고
아무것도 나를 도와 줄 수 없다.
비 맞은 스펀지마냥 바닥에 철퍼덕 할 수 밖에 없는데
올해는 나를 책망하지 않고 그냥 그렇게 내버려 두기로 했다.
꾸역꾸역 아쉬탕가 수업을 가는 것이 전부였다.
내가 좋아하는 장도 볼 수 없어서 부탁을 했어야 할 지경이었다.
저번 주에는 약간 정신이 나는 것 같아서
일부러 소믈리에 협회 일을 무리하게 잡았다.
그제는 밀라노의 무슨 파티까지 참석하고
돌아오자마자
다시 또 협회 워크샵에 참석했다.
아마 일부러 미리 약속하지 않았다면
나는 이상의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약속했으니까 지켜야 하니까
어떻게든 꾸역꾸역 하는 거다.
그렇지 않으면
깊이조차 가늠할 수 없는 내 내면의 음침한 다른 차원의 홀로
빠져들 것 같아서.
오늘은 간만에 해가 났다.
신나하며 서둘러 밀린 빨래를 했다.
테라스에서 빨래를 널며
작은 새 소리, 개 소리, 갈매기 소리 같은 것을 들었다.
손 등에 닿은 노란 햇볕이 엄마의 손길처럼(엄마와 손 잡은 적 없음) 따사로웠다.
그나저나 그 밀린 결제만 들어오면 완벽할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