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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이삼사오육칠팔구 Jan 21. 2020

남들처럼 살지 않아도 괜찮아

3. 그 분은 우리가 아니니까요




저번에 한국에 갔을 때 2주간에 걸쳐

위빠사나 명상이라는 것을 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




내가 이해한 명상이란 한 마디로 자각의 행위였다.


지금까지 나의 삶이란

그저 기존의 관성대로 하루하루 살아지는 것이었다.

현재 무슨 행동을 하고 있는지도 자각하지도 못했거니와

순간순간

내가 어떤 감각을 느끼는 지는 아예 관심조차 없이 살아왔던 것.




위빠사나 명상에는

구 수련생 중

봉사자 분들이 함께 참석하여

진행을 도와주시는데



이번 우리 매니저 분은

잠깐 배우가 아닌가 할 정도로 보통의 외모가 아닌 사람이라

한번 더 눈길이 갔다.

게다가

명상원에 온 사람치고는 걸친 옷들이

명품이라 조금 의아했지만,

바로

이런 생각을 하는 나도 참 촌스럽네,

하고는 혼자서 민망해져 버렸다.





명상홀은 오로지 명상을 하러 오는 곳이므로

다른 사람의 명상에 방해가 될 수 있는 모든 행동들이 금지되는데,


대화는 물론,

그 안에서는 스트레칭 같은 것도 금지이고,

심지어 바스락거리는 소재의 옷도 입고 들어갈 수 없다.




그래도 겨울이니까 어쩔 수 없이 패딩 같을 걸

입고 오신 분들도 계신데,

입구에 큰 담요가 마련되어 있어서

보통 다들 외투는 밖에 걸어 두고 담요를 사용한다.




그런데,

내 지척에

코를 습관적으로 킁킁거리는 아저씨가

마침 상하의 모두

방수 발포 등산복 같은 소재를 입고 와서는

정말 옷 속에 벌레가 들어간 사람처럼 계속 움직이는 것이었다.



물론 나도 입소

이틀 째라 긴장되고 민감해진 상태였을 것이다.




이런 곳까지 와서

너무 민감하게 구는 것 아닌가?

그럴려면 도대체 여기는 뭐 하러 온 건가 회의감이 잠깐 들었지만


또 이런 말을 참는 성격도 못 되어


오후 명상이 끝나자마자

매니저님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아니,

조심스러워 하는 척하며

말을 꺼냈다.



"저기, 제 근처 분이 너무 바스락 거리셔서..."

"아."



생각보다 무반응이라 감정을 더해 말을 얹혔다.



"너무 심해요.

자세히는 못 봤는데 회색 점퍼에 까만 바진데, 하의까지 등산복인가 봐요.

아니,

굳이 바스락 거리는 외투를 입고 들어올 필요는 없잖아요?

입구에 담요도 있는데 그거 덮으면 될텐데."



최대한 놀란 토끼눈을 해서는

반강제의 동조를 구하며 매니저님을 쳐다보았다.



'그런 분이 있나요? 정말 이상하네요!

걱정마세요.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라는 말을 당연히 기대하며

의기양양 일러바쳤는데,




순간 내 눈을 바라보시고

담담하게 말씀하시는 매니저님의 짧은 대답에

나는 이내 얼굴이 빨개지고 말았다.



"그 분은 우리가 아니니까요."




예상치 못한 답변과 반응에

머리가 띵했다.


그리고 바로 창피함이 밀려왔다.

사실은 그냥 해 본 말이라고,

생각해 보니 별로 시끄럽지 않았다고,

할 수 만 있다면

뱉은 말을 주워 담고 싶었다.



원래 명상원에서은 가본적으로

2주간 묵언을 하는 곳이다.

메니저님에게 저렇게 개인적으로말을 한다는 것은

그 사안이 필시 중대하여야 할 것이다.



그래서 기본적인

규칙은 입소전 모두 교육을 받고,

또 명상원 도처에 게시되어 있다.



그 아저씨가

저런 행동을 했다면

어떤 피치 못한 이유가 있었을 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나는

내 할일이 아닌

남의 향동에 더 집중한 것.







지금도 종종 불시에

그 일이 생각날 때가 있다.


그리고 혼자 중얼거린다.



"나는 나에게 집중하지 않았네."






그러고보니

벌써 일 년이 지났고,

나는 그 사이 조금 변한 것 같기도 하다.

자란 것 같기도 하다.



타인이 아닌 나에 집중하기.


타인을 나의 조건과 기준으로 바라보지 않기.




'늙어서 철들어가는 자신을 바라보는 것도 꽤 보람찬 일이네.'

괜히 뿌듯함을 부여하고

오늘은 내가 좋아하는 바치 초콜릿 한 상자를 나에게 선물했다.



'인생 뭐 있나,

내가 좋아하는 거 먹고 사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바쁜데!"



초콜릿은 달았고, 잠시 또 행복했다.









남들처럼 살지 않아도 괜찮아

프롤로그를 보시려면 :

https://brunch.co.kr/@daram/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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