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해도 괜찮아

우울이 역병이냐




사람들은 인간의 디폴트 감정을 ‘행복’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보인다.


다들 그 유니콘 같은 기준에 수렴하기 위해 이리저리 어떻게든 끼워 맞춰 보려고 안간힘을 쓴다.



하지만 크고 작은 반도의 소시민인 나의 경험으로는,



행복은 우리가 기준으로 놓고 좇을 만큼의 지속적인 감정도 아니며

더더군다나 어떤 목표가 되기에도 추상적이다.



그런 반면,


우울은 얼마나 지속적이며 안정적인 감정인가.

가끔 우울하지 않으면 불안할 정도로 친근하기까지 하다.



사실, 우리의 디폴트 감정은 ‘우울’ 아닐까.



우울은 흑사병처럼 걸리면 무조건 격리되어 처참하게 화영당해야 하는 신의 저주도 아니다.


‘이거 뭐야, 방금 나 우울한거야?

맙소사! 이제 나는 우울로 영혼이 잠식돼

제사상에 오르지 못한 마른 대추처럼

아무도 모르게 구석에서 홀로 말라 비틀어져 죽어가겠구나.’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사실,

나도 우울하고 너도 우울하고

우리 모두는 우울하다.

정신병자 소리 들을까봐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아서 그렇지.



우리는 ‘행복’을 느끼기에는 너무 많은 것을 알아버렸다.


모르는 것을 아는 것은 쉽지만, 아는 것을 모르게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린 돌아갈 수 없는 먼 강을 건너 와 버렸다.

어쩔까?





나는 대부분 우울하고

종종 불안하고

매우 드물게 행복한 것 같기도 하다.



우울과 불안을 너무 몹쓸 역병 취급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무짝에도 쓸데 없는 발가락의 털도

거실에 자리만 차지하는 수석들도



매일 그런갑다 하고

거부감 없이 보고

아무렇지 않게 지나치면서


우울 그게 뭐 대수라고.




우리는 우울하지 않음을 느낄 때야 말로 이상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이거 뭐지? 나 오늘 아직도 우울을 감지하지 못 한 건가? 소름...’

'나 방금 행복 비슷한 걸 느낀 것 같은데? 말도 안돼... 진짜 이상해!'



우울을 안아 주자.


불안에게 뽀뽀를 하자.



우울과 불안은 그동안 우리에게 저평가 되었다.

그 가치를 다시 돌아볼 때이다.


이것은 우울과 불안에 대한 공공연한 차별이다.



공포 영화는 있으면서 왜 우울 영화는 없는가.

누군가 슬퍼하면 동정을 받지만 우울해하면 외면당한다.

고된 하루를 보냈다고 하면 지지하면서 우울한 하루를 보냈다고 하면 멀리 한다.




감정에 왕후장상 어디있나.(?)

어떠한 편견과 고정관념 없는 마음으로 우리의 친근한 일상인

우울과 불안을 받아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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