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읽는 카드

환상 극장 8.

by 임이안

놀이동산에 놀러 간 소년은 중세시대 복장을 한 여자에게 호기심이 갔다. 여자는 풍성한 스커트 자락 앞에 여러 장의 카드를 펼쳤다 접었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시선을 눈치챈 여자가 소년에게 말했다.


"이 카드는 미래를 읽는 카드야."


"미래요?"


"그래, 바로 내일부터 아주 먼 미래까지 읽을 수 있단다. 단, 특정 나이대를 고를 순 없어. 네가 노인이 되었거나 아니면 바로 다음 주의 일을 예언할 수도 있겠지."


"만약 먼 미래 카드를 뽑는다면 내가 나중에 어떤 일을 하고 누구랑 살고 어디서 살고 그런 걸 다 알 수 있어요?"


그 말에 여자는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아니, 이 카드는 네 미래의 단 한 장면만 보여줄 수 있어. 그건 일터나 집이나 거리일 수도 있고 중요한 건 그 한 장면에서도 여러 가지를 추측할 수 있단 거야."


소년은 궁금했다. 당장 가까운 미래가 나올 수도 있겠지만, 만약 먼 미래에 대한 카드를 뽑는다면 자신은 어떤 사람이 돼있을까? 아빠처럼 결혼해서 아빠가 되었을까? 지금은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은데 과연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


여자는 카드를 접었다 펼치기를 반복하더니 마침내 테이블 위에 커다란 원형으로 카드를 배열했다.


"이 중 한 장을 골라봐."


소년이 고른 카드를 읽던 여자는 약간 미간을 찌푸리더니 묘한 표정을 지었다.


"여길 보렴."


여자의 가느다란 손가락이 허공을 가리켰다. 소년의 시선이 닿은 곳에는 한 젊은 남자가 호숫가에서 돌을 던지고 있었다. 구름 한 점 없이 새파란 하늘처럼 맑은 물은 크고 너른 바다 같았는데 여자는 북쪽의 끝에 있는 거대한 호수라고 알려줬다. 호숫가는 무척 아름다웠다. 호숫가를 둘러싼 키가 크고 늘씬한 나무들은 햇살 아래 무지개색으로 찬란하게 빛났다.


저만치에서 누군가 물 위로 고개를 내민 채 퐁당퐁당 돌을 던지는 남자에게 성난 표정을 지었다. 물 위로 드러난 머리부터 목과 어깨까지 눈부시게 반짝이며 빛나는 인어였다.


"인어가 화가 난 것 같은데요? 그런데 저 사람은 내가 맞아요?"


인어가 사는 곳에 자꾸만 돌을 던지는 남자의 얼굴도 어딘가 심술 나고 화가 난 듯 보였다.


소년은 당황해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너무 시시하고 실망스러운 미래였다. 세상에, 호숫가에서 화를 내며 돌을 던지는 어른이라니. 그것도 인어가 사는 곳을 훼방 놓는 사람이라니.


여자는 소년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여자의 눈동자는 생생한 초록색이었고, 신비로움이 깃든 눈동자를 응시하던 소년은 자신이 어떤 것에 크게 실망했는지 잠시 잊었다.


"그건 비유적으로 보여주는 거야. 남자는 지금 자신의 꿈에 의구심을 던지는 중이란다. 남자의 표정을 봐. 정말 지긋지긋하고 넌더리 나는 모양이구나. 그 대상은 일이나 관계, 일상의 사사로운 모든 것이 될 수 있지.

넌 아주 사소한 것에 성을 잘 내는 어른이 되었구나."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소년은 후회하며 물었다. 미래를 본 것이 후회됐다. 저 장면은 잊히지 않는 악몽으로 남을 것 같아 두려웠다.


"어른은 정말 일이 많거든. 감내해야 할 일이 생기고 그 과정에서 숱한 고민과 스트레스가 오갈 거야. 그 사이 지치고 녹초가 되어 갖고 있던 꿈을 잊어버리는 건 한 순간이지. 어려움에 위압당하고 굴복하게 되면 존재하던 가능성도 있지, 네게서 도망갈 거야. 처음엔 그곳에 있던 가능성이 달아나면서 어려움은 의기양양한 웃음을 지을 거야.


저 새파란 호숫가 풍경은 네 미래고 저기 있는 눈부신 인어는 무의식에 사는 요정이지. 요정의 입장에선 얼마나 짜증 나고 화가 나는 일이니. 네가 처음에 있던 가능성도 내쫓아버리고, 저렇게 쉽게 성내는 사람이 되었으니 말야. 미래를 의심하며 아름다운 풍경에 퐁당퐁당 돌을 던지면서 말이지.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이 질문은 잊지 마.


밥은 제대로 챙겨 먹었니? 오늘 하루 어땠어? 왜? 어떤 게 문제야?


물론 그런 걸 묻고 싶지 않은 날들도 있어. 그냥 다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고, 스스로를 돕는 것조차 어려울 때도 있어. 물론 그럴 때도 있지. 그렇지만 잊지 마. 자기 자신에게 먼저 안부를 묻고 포옹하고 다독일 줄 아는 사람에게 가능성은 그 모습을 보여줄 거란다. 그 사람은 가능성이 사는 호숫가에 도착해 눈부신 무지개색 나무들이 빛나는 풍경과 마주할 거야."


여자의 초록색 눈동자는 악천후를 이겨낸 소년이 지금 막 호숫가에 도착한 모습을 발견한 것처럼 환하게 빛났다. 생동감 넘치는 초록색 눈동자를 바라보며 소년은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저 남자를 미리 만나볼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말이다. 자신은 그런 어른은 되고 싶지 않았으니까. 어쩌면 미래를 바꿀 수 있었다. 적어도 인어가 사는 아름다운 곳을 훼방 놓고 싶진 않았다.


소년은 자신이 미래를 점치는 사이 놀이기구를 타고 여유롭게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던 동생을 만나 자신이 겪은 일을 들려줬다. 동생도 궁금해하길래 소년은 동생 손을 잡고 그곳을 찾았다.


분명 여자는 우주 체험관 맞은편 탁 트인 잔디밭에서 중세시대 복장을 하고 거대한 스커트 자락을 사방에 펼친 채 앉아 있었는데. 나무 한 그루 없던 그 드넓은 초원에서 소년의 미래를 점쳤는데.


여자가 머물던 자리에는 훌쩍 키가 큰 메타세콰이아 한 그루가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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