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첫 여행이었던 뉴올리언스에 도착한 첫날 저녁. 14시간의 긴 운전으로 지쳐버린 남편과 가까운 식당 아무 곳에서나 저녁을 해결하고자 헤매었다.
다행히 오래지 않아 긴 줄이 늘어선 로컬 식당을 찾았고 브리또 등으로 보이는 멕시칸 음식점에 들어가게 되었다.
미국에 온 지 겨우 6개월, 언어도 언어였지만 그들의 시스템에 아직 영 적응이 되지 않은 상태였고 특히나 주문을 할 때 뭔가를 많이도 골라야 하는 그들의 맞춤형 음식이 어색할 때였다.
바로 앞에서 내 선택을 기다리며 큰 스푼을 들고 있는 종업원들의 거친 남부 사투리와 바로 뒤에서 무언의 눈빛으로 재촉하는 사람들까지. 그 부담감에 정신없이 아무거나 막 눈에 보이는 대로 선택하여 정체도 알 수 없는 브리또를 완성해가는 순간이었다.
포장이 되어가는 내 음식을 보며 조금씩 정신이 드는 동안 그제야 다른 사람들이 고르는 새우 타코나 각종 프라이즈 등의 무겁지 않고 맛있어 보이는 메뉴들과 메뉴판에 또렷이 표시되어 있는 그 식당의 시그니쳐 메뉴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차! 마음으로 밀려오는 찝찔한 무언가를 느끼며 다시 기회가 온다면 더 뭔가 자연스럽고 여유 있게 최고로 맛있는 조합을 주문할 수 있을듯한 미묘한 후회와 약간의 자괴감을 느끼며 내 음식을 받아 들고 계산을 하였다.
그렇다고 다시 다른 메뉴를 곧바로 도전해보기엔 이미 지쳤고, 남부 사투리에 자신감도 바닥을 찍은 상태로 다시 그런 비용과 시간을 쓸 만큼 내가 받아 들고 있는 그 브리또가 형편없어 보이지는 않았다.
그냥 약간 그 낯섦과 서툼. 그로 인해 충분히 생각하지 못한 선택이 그냥 살짝 찜찜하고 불쾌한 그 수준이었다.
바로, 그런 순간이다. 결혼 13년 이란.
나는 10살과 12살 아들, 그리고 남편을 둔 43세의 윤미경이다.
나는 남편과 5개월의 연애로 결혼을 했다. 내 나이 서른. 그때 나는 서른에 꼭 결혼하리라 목표를 세우고 그를 달성했다. 10년의 자취생활은 외로웠고 불안했다. 그때 나는 결혼이 하고 싶었다. 결혼은 그냥 같이 사는 친구 한 사람이 생기는 것이라 참 순진하게 생각했었다.
누구나 그렇듯이 결혼에 무지했다.
결혼 13년에 느끼는 나의 삶은 뉴올리언스의 찝찔한 브리또와 같다.
사실, 호텔로 돌아와 맥주와 함께 먹었던 그 브리또의 맛이 나쁘지는 않았다. 하지만 너무 많은 재료를 넣은 탓에 먹기에 너무 무거웠고 먹는 동안 부재료가 계속 흘러내려서 지저분하게 먹어야 했다.
다시 또 그 음식을 먹겠냐고 묻는다면, 고개를 그냥 갸우뚱할 것 같다. 누구에게 먹어보라 추천하기에도 그렇다고 절대 먹지 마라 훼방을 놓기에도 애매한 음식이었다.
내 삶은 상당히 안정되어 있고, 아직도 남편과 나는 서로 사랑하고 있다. 남편은 나를 최고로 여겨주며 늘 내게는 다정하다. 크게 문제나 고민이 없으며 내가 원하는 대로 미국에 와서 살고 있다.
남편을 사랑하는 마음과 결혼생활은 다른 것이다. 생활은 누군가의 희생과 노동이 뒤따르며 인스타에 나오는 예쁜 사진들과는 다르다. 질척하며 흘러내리고 때론 추하고 지저분하다. 특히나 아이들을 키우는 이슈에 다가가면 엄마의 생활이라는 것은 전혀 차원이 다른 환희와 동시에 애증과 분노, 불안이 뒤섞인 여러 편의 동시 상영과 같다.
그래서 나는 어떤 이에게는 좋은 사람 만나서 결혼해야 한다며 오지랖을 떨다가도 또 어떤 이의 결혼식에 가서는 그녀의 앞날에 나도 모르는 눈물을 훔치기도 한다.
그 일치하지 않는 이중적 모습이 모두 나이다. 모두가 나의 진짜 마음이다. 삶은 그냥 삶이다. 미리 알았다면, 나는 온전히 내가 원하는 브리또를 얻을 수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