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모든 종류의 관계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미국으로 왔다.
여기서 남편과 아이들을 포함하여 '우리'라고 표현하지 못한 이유는, 그들은 그저 내 간절함을 저버리지 못해 따라왔기 때문이다. 물론, 동기의 자발성과 도피 후 삶의 만족도는 또 별개의 문제이긴 하다.
얼굴이 말라비틀어질 듯한 처음 만나는 40도의 길고 지독한 여름 동안 나는 더욱 철저히 도망자처럼 여전히 아무런 의미 있는 관계를 맺지 못한 채 이방인으로 그저 스쳐 지나가고 있다. 관계로부터 멀어지고 싶었으나 결국 가끔은 외롭다.
결혼 전의 관계는 단순하다. 직장생활에서 마주쳐야 하는 진상들이란 그저 월급으로 참아지는 그런 수준이며 아무런 의미가 없으니 사실 관계라고 하기도 미미하다. 그런 의미에서 결혼 전의 내 주변은 거의 내가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을 내가 원하는 때에 내 호흡에 따라 관계 맺은 이들이었다.
아무도 내게 결혼이 곧 관계의 늪에 빠지는 것이라고 경고하지 않았다.
남편은 내가 원해서 선택한 내 관계 속의 사람이었지만, 결혼과 동시에 그는 등 뒤에 숨겨져 있던 거대한 한 무리를 펼쳐놓았다.
그런데 한 가지 참으로 이상한 것은, 결혼과 함께 내 등 뒤에 나도 모르게 숨겨져 있던 관계의 강력한 이면이 드러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결혼 전에는 여름휴가를 나를 위해 쓸 수 있었지만 갑자기 부모님과 다 같이 여행을 매년 가야 한다던가 아니면 온갖 경조사를 남편의 체면이 깎인다는 이유로 챙겨야 한다던지 그런 것들이었다.
그런데 이런 일들의 가장 최고는 바로 내가 아이를 낳고 나서부터 시작되었다. 아이를 매개로 나와 남편의 모든 관계들은 갑자기 하나의 거대한 거미줄로 연결되었고, 우리는 아니 나는 거기서 허우적거렸다. 또한 엄마가 됨으로써 생기는 아이들을 매개로 연결되는 관계들은 끝까지 어색하고 적응되지 않았다. 거기에서 워킹맘인 나는 무조건 '죄송합니다'였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드러내기 어려운 소심한 한국사람이었던 나는, 13년을 누구로도 살지 못했다. 마치 다중인격자와 같이 관계에 걸맞은 여러 개의 모습으로 변신하며 나를 잃어갔다. 하지만 분명히 해둘 것은 그 누구도 내게 강요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저 내가 그런 어리석은 선택을 했을 뿐이고 그런 내가 매번 마음에 들지 않았다.
드라마에 나오는 현명한 사람이 아니었던 나는 현실에서 멋지게 관계를 개선하거나 나를 드러낼 수 없었다. 나는 나약하고 비겁했고 좋은 사람이고 싶은 허영을 끝까지 버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도망쳤다. 온갖 멋진 말로 우리 가족의 이동을 포장하며 작별인사를 했지만 그저 벗어나고 싶은 욕망이 가장 큰 이유였다.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때때로 들기도 하고 그 지긋했던 관계가 그립기도 하다. 하지만, 삶이란 늘 부족함이 있고 사람은 대체로 미래를 위해 나아가기보다는 후회를 끌어안고 운다. 당분간 이어질 이곳에서의 삶을 그저 많은 불안과 후회와 그리고 또 가끔의 희망과 환희로 채워나갈 생각이다.
관계로부터의 탈출은 어쩌면 처음부터 실패할 미션이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