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준비를 하는 중에 끊임없이 찡얼대는 두 녀석들의 장난인 듯, 다툼인 듯 한 소란이 어이 졌다.
흡사 네댓 살의 유아들처럼 반 울먹이는 칭얼 소리를 12살의 키가 내 머리까지 오는 큰 아이가 동생에게 내고 있었다. 평소 또래보다 어린 듯 유아 같은 생각과 마음 씀씀이가 늘 걱정이던 나는, 염려를 넘어선 분노로 끓어올랐다. 날카로운 목소리로 날 선 비판을 하며 한숨을 몰아쉬었다.
"쫌!! 애기같이 굴지 마. 찡얼 대지마. 나이에 좀 맞게 행동해..!"
하지만, 녀석들은 언제나 나를 끝까지 몰고 간다. 저녁을 먹는 자리에선 또 둘째 녀석이 아기처럼 밥을 마구 흘리며 정돈되지 않은 몸짓으로 식탁을 휘저어댔다. 또다시 나는 그의 유아 같은 행동이 참기 어려웠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녀석들에 대한 걱정은 이제 마음 밑바닥에 우울로 켜켜이 쌓여 한번 물결치면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한참을 아기처럼 굴지 말라고 밥 먹다 말고 잔소리를 해대던 중간, 슬픈 기색의 아이들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또 죄책감의 짐 하나를 마음에 새기고 말았다.
지나치게 긴 두 달 반의 미국 여름방학. 벌써 보름이 넘은 녀석들과 나의 24시간 동행으로 나는, 삼시 세 끼에 간식이라는 가사의 고됨과 미국 생활의 고립감까지 합쳐져 거의 미칠 지경에 이르렀다.
주방을 마감하고 이른 선잠에 빠진 나는 아이들의 속닥거리를 소리에 깨어났다. 아이들은 굿나잇 인사 대신 잠든 엄마를 위해 굿나잇 편지를 써서 내 곁에 놓고 가려 했던 것이었다.
아기 같은, 이제 막 글을 배우는 듯한 유아틱 한 글 솜씨의 편지에는, 아기 같은 순한 사랑도 함께 있었다.
12살, 10살 아이들은 아기처럼 여전히 나를 맹목적으로 사랑하고 또 늘 쉽게 용서한다. 그들의 유치한 언행을 저녁내 비난했던 나는 그들의 유아 같은 순수한 사랑으로 숙연해졌다. 그리고는 순간, 그들의 아기 같음이 고마워졌다.
어느 날인가 녀석들이 제 나이로 철이 들고, 내게서 독립할 때 아마도 나는 이 순간들을 누리지 못했다는 후회를 하지 않을는지.
그들에게 좀 아기 같아도 괜찮다고, 나를 사랑해줘서 고맙다고.
또 하나 전하지 못한 나만의 사죄를 마음속 무겁게 가라앉혀본다. 언젠가 내 마음속 녀석들을 향한 죄책감과 우울의 더미보다 더 커지길 소망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