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이제는 나에게서 멀어져간

by AIR

명동역에서 지하철을 탈 때는 늘 1-1을 이용한다. 그녀의 집에 가기 위한 최단거리를 경험으로 익혔고, 이제는 습관이 되어버린 그 자리가 가진 또 하나의 장점은 많은 이들이 이 곳을 통해 내리는 덕에 예기치 못한 빈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는 점이다.


오늘 나의 행운에 제동을 건 1-2의 남자는 통통한 여자친구의 손을 이끌고, 나를 기다리던 자리를 그의 그녀와 함께 차지했다.

다분히 나를 의식한 듯한 허우적대는듯한 손짓에 잠시 멈칫한 것이 나의 패인이었다.

어쩔 수 없이 나의 그녀만을 자리에 앉힌 채 신문을 펴들었다.

승차할 때의 요란함과는 달리 그들의 대화에는 아무런 소음이 없다. 한 손에 들고 읽던 문고판 책 너머로 그와 그녀의 대화가 눈에 들어온다.

그들은.. 입이 아닌 손으로 대화하고 있었다. 남자의 손이 쉬지 않고 열 번을 움직이면 여자는 가볍게 한 두번 두 손으로 기하학적 문양을 그리듯 움직이고, 남자는 이내 참지 못할 만큼 큰 웃음을.. 그녀에게 보인다. 누구도 듣지 못하는 그들만의 대화에 조금씩 빠져들어간다.


그들의 대화는 누구나 볼 수 있지만, 아무도 들을 수는 없는 것이었다. 적어도 내가 아는 한 1-1에서 1-2 사이의 사람들은 모두들 그 이야기에 귀와 눈을 기울였지만 그 내용을 알아들을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누구나 볼 수 있지만 아무도 알 수 없는 그들만의 대화. 군중 속에서 그렇게 자신들만의 공간을 만들어 낸 그들은 자신들만의 다정한 섬을 만들어 낸 듯 했다.


열 정거장이 넘는 거리를 지하철이 달리는 동안 나는 책 한 장 제대로 넘기지 못하고 그들의 즐거운 대화를 엿들을 수 밖에 없었다. 걷잡을 수 없는 행복에 그는 그녀의 어깨를 감싸안기도 하고, 얼굴을 마주하고 무언가 눈빛으로 건네기도 했다. 그 간절한 표현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진중한 무게가 실린 듯했다.


어려움 속에서 피어난 사랑이라고 생각하다 나의 건방짐을 꾸짖기도 하고, 소리가 없기 때문에 덜 싸울 수 있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하다 내 가벼움에 다시 한 번 자책하고...


사랑..

다른 어떤 말로 그 아름다움을, 위대함을 정의할 수 있을까.가벼운 입이 아닌 뜨거운 마음으로 진심을 담아 하는 저 손짓에.

또 한 번 저 진부한 단어를, 꺼낼 수 밖에 없는 내 표현력이 아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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