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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픽션] 입사 첫날, 의원들과 마주하다.

by 꽃피랑


드디어 출근 첫날, 긴장되는 마음으로 정장을 다려 입었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하게 될까?

함께 일하게 될 의원님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설렘과 두려움을 동시에 안고 사무실로 들어섰다.

“안녕하세요! 오늘부터 출근하게 된 이지연입니다.”

“일찍 오셨네요! 여기 앉으시면 됩니다.”


먼저 출근한 직원이 안내해 준 자리에는 컴퓨터만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컴퓨터는 있었지만 공무원 전용 행정시스템도 설정해야 하고 내부 메신저 설치나 보안 설정 등을 해야 해서 아직 업무를 할 수는 없었다. 나 말고 새로 임용된 정책지원관이 한 명 더 있어서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잠시 후, 팀장님도 출근하셨는데 나보다 나이가 3~4살 정도 많아 보였고 주변 분위기를 쾌활하게 만드는 느낌이라 살짝 마음이 놓였다.

“벌써들 나오셨네? 오늘 임시회라 의원님들도 나오셨으니 먼저 인사한 다음에 다른 직원들에게도 인사하러 가시죠!”

“네.”


팀장님을 따라 청년의원인 박세준 의원부터 만나러 갔다. 출근하기 전, 홈페이지에서 그의 사진을 본 적이 있었지만 실제로 보니 묘한 느낌이다. 비록 A지역 출신도 아니고 나이도 나보다 어리지만 다른 지역에서 적극적으로 시민단체 운동 경험을 쌓아 광역 의회에서도 일했고 시의원까지 당선되었다.

자신감 있고 풍채가 당당한 그는 활짝 웃으며 힘차게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박세준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많이 도와주시길 바랍니다.”

나보다 10살 정도 어리지만 그래도 의원인데 허리를 굽혀 깍듯이 인사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나도 허리를 숙이며 인사했다.


다음으로 오미경 의원과 인사할 차례였다. 통화하는 소리가 흘러나와서 잠시 기다렸다.

“뭐라고요? 그게 무슨 소리예요? 제대로 알아보고 다시 통화해요!”

짜증이 묻어나는 목소리. 나중에 다시 인사드리러 와야 하는 거 아닌가? 생각하고 있는데 팀장님은 별 일 아니라는 듯 노크하고 들어갔다.


“어머! 드디어 보좌관들이 오셨군요! 정말 반갑고 잘 부탁드려요!”

방금 짜증 내면서 통화했던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둥글둥글한 얼굴에 잘 웃는 인상이 푸근해 보이는 중년여성이었다. 다만, 보좌관이 비서에 가깝다면 정책지원관은 정치적 중립을 지키면서 공식적인 의정활동만 지원하는데 보좌관이라고 부르는 것이 살짝 마음에 걸렸다.


하필 출근 첫날이 임시회가 열리는 날이라 조영만 의원과 김병수 의장과는 서둘러 인사를 하고 회의장 2층 방청석에 앉았다. TV에서 보던 국회를 작게 만든 듯, 마치 모의국회장에 와 있는 것 같았다. 높은 상석에 사무과장과 의장, 의사팀장의 자리가 있었고 그 앞에 연설대, 양옆으로 국장과 과장들이 자리를 꽉 채우고 있어서 엄숙한 분위기였다.


10시 정각이 되자 의장님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성원이 되었으므로 제296회 임시회 본회의를 개의하겠습니다. 땅땅땅”

의회의 ‘본회의’는 지금까지 내가 알던 ‘회의’와 단어만 비슷할 뿐,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수다처럼 진행되던 인터뷰, 혹은 동그랗게 앉아서 자신의 아이디어를 브레인스토밍하던 그런 회의에 익숙했던 나는 이미 정해진 시나리오대로 낭독하면서 진행되는 회의가 생소하기만 했다.


“의원 여러분, 이의 없으십니까?”

“없습니다.”

“이의가 없으므로 가결되었음을 선포합니다. 이것으로 제1차 본회의를 모두 마치겠습니다. 의원 여러분과 공무원 여러분,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산회를 선포합니다.”


분명 한국어인데도 가결, 산회 등 실생활에서 거의 안 쓰는 단어들이 낯설었다.

회의용어도 어려워하는 내가 과연 여기서 잘할 수 있을까? 생각에 빠져 있던 나는 ‘임용식을 하러 가자’는 팀장님의 목소리에 자리에서 일어섰다. 구정연구단에서도 공무원 경험을 한 적은 있었지만 임용식을 한 적은 없었고 계약서 한 장만 달랑 받았을 뿐이었다.


직원들이 손뼉 치는 가운데, 의장님께서 임용장을 주셨고 나는 겸손하게 받아 들었다. 번쩍. 플래시가 터졌다. 내가 임용장을 받는 모습과 임용식이 끝나고 의장님과 어색한 표정으로 찍은 사진들은 보도자료와 함께 언론사에 배포되었다.


여러 지방의회에서 있었던 일들을 가상의 의회와 가명으로 만든 다큐픽션 형식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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