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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의회에 입성하다.

내가 정책지원관이 된 이유

by 꽃피랑

2023년 1월 1일. 새해가 되었지만 전혀 기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암울하기만 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날부터 나는 공식적인 백수가 되었기 때문이다. 어쩌다 공무원이 된 것만큼이나 갑작스럽게 자연인으로 돌아갔다.


2019년 봄에도 나는 비슷한 절망감을 맛보았다. 오랫동안 시민참여와 직접민주주의에 대해 관심이 많았기에 8년이 넘게 관련 활동을 했다. 시장이나 정부가 할 수 없는 사회적 문제에 대해 시민과 그들이 만든 자발적인 공동체가 대안을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다. 활동을 하면서 많은 사례들을 접하고 사람들을 만났지만 나 자신은 한 번도 그런 활동을 직접적으로 해본 적이 없다는 괴리감이 들었다. 나는 해본 적도 없으면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지역활동에 참여해 보라고 권유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편치가 않았다.


결국 나는 2018년 겨울, 오랫동안 정들었던 회사를 떠나 지역활동을 해보기로 했다. 하지만 옆에서 성공사례를 지켜보는 것과 내가 직접 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내가 사는 동네에서 뜻이 맞는 사람들을 만나 협동조합을 만들었고 실제 지역에서 몇몇 프로그램을 실행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하지만 사업을 통해 돈이 들어오기 시작하자 오히려 갈등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 수익을 조합에 재투자해서 더 성장시키고 싶었지만 몇몇 조합원은 자기 통장에 넣고 싶었다. 갈등은 점점 심해졌고 결국 우리는 2019년 봄, 협동조합을 해산하기로 했다.


때마침 서울시에서는 25개 자치구마다 구정연구단이라는 것이 생겼다. 서울에는 서울연구원이 있지만 사실 자치구마다 여건이 다르다. 종로구 같은 곳은 인구가 많지 않지만 재정자립도가 높은 반면, 강서구처럼 마곡신도시가 생기면서 인구가 급격하게 증가한 곳도 있었다. 그런 이유로 각 자치구의 특성을 반영한 정책을 수립해 보고자 서울시와 서울연구원, 그리고 자치구가 매칭을 하여 구정연구단을 만들어졌다. 다행히 나는 서울에서도 가장 부유한 자치구의 구정연구단에 합격했고 얼떨결에 공무원이 되었다.


구정연구단에서 나는 지역 사람들을 만나 그들이 필요로 하는 정책을 제안하는 보고서를 만들었다. 주민들과 논의해서 그들이 원하는 연구주제를 협력하여 진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2022년 6월 제8회 지방선거에서 구청장이 바뀌면서 불안감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원래 내가 있던 자치구는 보수가 우위였지만 2016년 최초로 민주당 국회의원이 당선되었고 2018년 지방선거에서도 같은 당 구청장이 당선되었다. 하지만 2022년 선거에서는 다시 보수로 바뀌었다. 보통 단체장이 바뀌고 나면 이전 단체장의 업적은 없애버리는 것이 관행인지라 어쩌면 내가 일하던 조직 역시 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서울시에서 임기제 공무원으로 일하던 남편 역시 시장이 바뀌면서 계약을 연장하지 못했다. 둘 다 집에 있을 수는 없다는 생각에 여기저기 지원했지만 불합격통보만 받았다. 결국 내가 우려했던 대로 구정연구단은 없어지는 것으로 결론이 났고 나 역시 남편과 마찬가지로 계약이 종료되면서 2023년부터 백수가 되었다.


우울한 마음에 매일 채용공고를 살펴보니 정책지원관 공고가 많이 올라오고 있었다. 정책지원관? 처음 듣는 단어였다. 2022년 지방자치법 개정과 함께 지방의회의 전문성을 강화하고자 새롭게 도입되었다고 했다. 사실 직접민주주의와 풀뿌리 참여에는 관심이 많았지만 정작 대의민주주의 기관인 지방의회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구정연구단에 있을 때 행정사무감사를 한다며 무섭게 소리를 지르던 구의원들의 모습만 또렷할 뿐이었다. 하지만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주민을 대표하는 기관으로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해서 조례를 만들거나 수정한다면, 혹은 단체장을 견제한다면 지방자치를 실현할 수 있지 않을까? 지금까지 주민들을 만나고 연구했던 경력이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정책지원관에 지원했고 다행히 A의회로부터 합격통지를 받았다. 그렇게 나는 또다시 공무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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