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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의회가 정말 가능할까?

시민의회로 가는 길

by 꽃피랑

우리나라는 1987년 6월 항쟁으로 대통령 직선제 기반의 개헌이 이루어졌다. 1991년에는 지방의회 의원선거가 있었고 1992년부터는 지방자치단체장도 선거로 뽑게 되었다. 선거제도를 통해 합법적으로 지배세력이 교체된다는 점에서 우리나라는 민주주의 국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시민들이 원하는 대로 정책이 만들어지고 정치가 움직인다고 느끼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대다수의 정치인들은 선거 때마다 국민, 혹은 시민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며 본인을 지지해 달라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이를 믿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믿고 지지했던 정치인들이 정작 권력을 얻고 나면 완전히 달라지고 결국 탄핵까지 되는 모습을 봤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 책의 저자인 김상준 교수는 이러한 문제의 대안으로 성별, 연령, 지역 등을 고려해 무작위로 뽑힌 시민대표들이 다양한 문제에 대해 숙의와 토론을 거쳐 방향을 모색하는 시민의회를 제안한다. 대의 민주주의 기구인 국회나 지방의회가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시민의회법 제정을 통해 상시적인 숙의기구인 시민의회를 설치하고 직접 참여를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 주요 골자이다. 이미 미국, 캐나다 등에서도 시민의회 사례가 나타나고 있고 숙의과정을 통해 전문가의 의견을 청취하고 학습함으로써 다양한 입장의 시민들이 함께 상호 합의된 대안을 도출할 수 있다.


그러나 주민참여예산, 주민자치회 등 주민들의 직접 참여를 경험해 본 나로서는 정말 시민의회가 대의민주주의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한 예로 주민참여예산 역시 무작위로 선발된 주민들이 예산과정에 참여하여 재정민주주의를 실현하겠다는 아이디어에서 시작되었다. 대부분의 지방자치단체에 주민참여예산 제도가 시행되고 있고 해마다 아이디어 공모와 동별 지역회의, 지역별 주민참여예산 위원회 등을 거쳐 예산이 편성되고 실제 사업으로도 이어진다. 2018년부터는 예산계획과 편성, 집행, 결산과 환류에 이르는 전체 예산과정으로 주민참여를 확대하였다.


하지만 은평구처럼 주민참여예산을 적극적으로 해왔던 일부 지방자치단체를 제외하고는 상당 부분 행정이 주민참여예산을 주도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주민참여예산이지만 정작 주민들은 별 관심이 없고 참여가 저조하기 때문이다. 주민들이 지역에 관심을 갖고 아이디어를 내야 하지만 대부분 사업부서의 예산으로 처리할 수 있는 민원성 시설개선 사업 관련 내용이 대부분이다. 자발적으로는 좋은 아이디어가 나오지 않다 보니 공무원들이 억지로 아이디어를 내고 지역주민들의 이름만 올려 사업을 진행하는 사례도 본 적이 있었다.


그렇다고 지역주민들의 문제라고 할 수도 없는 것이, 주민참여예산에 대해 아예 들어본 적도 없는 주민들이 많았고 어떻게 참여할 수 있는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아무런 정보가 없었다. 제도에 대해 널리 알리고 참여하기 전, 예산에 대해 학습하는 과정에 선행되어야 하지만 그런 과정이 생략되면서 형식적으로만 운영되기도 했다. 시민의회 역시 참여하는 이들에게 정확히 어떤 권한이 주어지고 그들이 도출한 의견을 어떻게 정책화할 것인지, 참여하는 시민들의 역량을 어떻게 높일 것인지 등에 대한 구체적인 검토 없이 제도만 만든다면 형식적으로 운영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시민의회가 제대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이상이나 법제화만으로는 부족하고 보다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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