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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픽션] 회사 속의 정치학(2)

갈등의 시작

by 꽃피랑

지난번 내가 가지 못했던 출장 이후, 박세준 의원은 종종 정하윤과 함께 관내 복지관이나 지식산업센터 같은 곳으로 출장을 갔다. 사례연구를 한다며 다른 지역의 시설을 함께 보러 가기도 했다. 출장을 다녀오면 정하윤 지원관이 보도자료를 작성해서 배포했고 다른 지역과 비교하면서 집행부에 시설개선을 요구하는 5분 발언과 관련 PPT, 보도자료 작성 등도 그녀가 맡게 되었다.


화창한 아침, 사무실에 들어서면서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하지만 정하윤은 모니터만 바라볼 뿐, 아무 말이 없었다.

‘내가 뭘 잘못했나?’ 속으로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그저 일을 잘 못하는 나 때문에 짜증 나서 그러는 것 같다고 짐작만 해볼 뿐.


팀장님께서 여름휴가를 가고 나와 정하윤만 출근했던 날이었다.

따르릉.

팀장님 자리에 전화벨이 울리자 내가 당겨 받아서 팀장님께서 휴가라고 안내했다.


잠시 후, 다시 팀장님 자리에 전화벨이 울렸다.

이번에는 정 지원관이 전화를 받겠지 생각했는데 세 번을 울려도 받지 않아서 다시 내가 당겨 받았다.

왜 팀장님께 걸려오는 전화를 안 받는 건지 물어보자니 내가 치졸한 인간이 되는 것 같았다.

의원님께서 시키신 일이 너무 바빠서 그런가 보다. 덜 바쁜 내가 받아야지.라고 생각하며

팀장님의 여름휴가 기간 내내 내가 팀장님의 전화를 대신 받았다.


그녀와 나는 의원을 대하는 방식도 달랐다.

지난번 조영만 의원에게 호되게 당한 이후, 모든 의원에게 똑같이 선을 긋고 대하는 나와 달리 그녀는 의원에 대한 호불호가 분명했다. 특히 박세준 의원 사무실에 가면 1~2시간씩 있는 건 예사였다.

슬슬 의회 사람들은 그녀 앞에서 박 의원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게 되었다.


팀장님께서 여름휴가에서 돌아왔던 날, 정하윤이 말했다.

“팀장님, 어제 박세준 의원님께서 의정대상 수상을 위해 지금까지 제정했던 조례와 그에 따른 성과를 정리해 달라고 하셨는데요.”

팀장님은 난감하다는 듯, 이마에 손을 얹고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래요? 흠. 수상을 위한 공적조서 작성은 의회 공식활동이 아닌데… 의원 개인이 상을 받는 것이라 도와줘도 될지 모르겠네…”

“이건 의원 개인이 상을 받는 게 아니라 박세준 의원님께서 제정한 조례와 관련된 상을 받는 것이니 엄연히 공식 의정활동이고 저희 업무에 들어간다고 생각합니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흐른 후, 팀장님이 말했다.

“공무원은 정치적 의무를 지켜야 하고 이번에 박 의원님을 도와드리면 다른 의원님들도 개인적인 수상일 때도 공적조서 작성을 요청하실 수 있으니 안 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하지만 팀장님의 부정적인 의견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요지부동이었다.

“정책지원관 업무 관련해서 의원의 공적조서 작성을 제한하는 규정이 있나요? 팀장님 말씀대로라면 이제 저희 팀은 의원님께서 공적조서 작성을 요청하시면 모두 안 된다고 거절해야 되나요? 박 의원님께는 팀장님께서 안 된다고 하셨다고 말씀드리면 되는 거죠?”


그 뒤로도 한동안 팀장님과 그녀는 논쟁을 이어가면서 점점 언성이 높아졌다. 사무실 분위기가 삭막해지면서 나는 속으로 그녀가 팀장님 말씀대로 따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본인이 전적으로 옳다고 확신하고 있었고 전혀 굽힐 것 같지 않았다. 그렇다고 내가 참견할 수 있는 대화 주제도 아니었다. 내 자리의 오른쪽은 팀장님, 왼쪽은 정하윤이 앉아 있었기 때문에 중간에 끼어있는 나는 일이 손에 잡히지를 않았다. 하지만 이건 갈등의 시작에 불과했다.


여러 지방의회에서 있었던 일들을 가상의 의회와 가명으로 만든 다큐픽션 형식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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