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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픽션] 회사 속의 정치학(3)

고래싸움 속 새우

by 꽃피랑

잠시 사무실을 빠져나와 15분 정도 시간이 흘렀을까?

사무실에 들어갔는데 논쟁은 한층 더 격렬해져 있었다.


“팀장님께서 정 안 된다고 하시면 저는 연차를 내서라도 갈 거예요.”

“출장이나 연차를 내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공무원의 정치적 의무 때문에 그런 거라니까!”


팀장님도 감정이 격해졌는지 어투가 반말로 바뀌어 있었다.

“그럼 이런 건 왜 가능하고, 저런 건 왜 안된다는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주세요!”

“아니, 어떻게 상황 하나하나에 맞춰 다 가이드라인을 만들 수가 있나?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판단하는 거지!”

“그건 그냥 팀장님 마음대로 하시겠다는 거 아닌가요?”


결국 정하윤은 팀장님의 의견을 무시하고 박세준 의원에게 공적조서 작성도 도와드리고 시상식도 지원하러 가겠다고 이야기했다.

박세준 의원은 정하윤에게 공적조서 작성 외에도 시상식 때 발표할 PPT작성과 현수막 제작도 부탁했다.

그녀는 내친김에 시상식 당일 부스 운영까지 하기로 했다. 이후, 부스에 설치할 패널과 현수막 등을 만들고 디자인 시안 관련 박 의원의 컨펌을 받느라 정신없이 바빴다.


반면, 나는 의원들이 업무 관련 요구에 항상 조심스러운 입장을 견지했다.

정하윤과 의원들이 보기에는 나 또한 복지부동한 공무원의 전형이었으리라.


어느 날, 조영만 의원이 나를 방으로 불렀다.

“이번 금요일에 우리 지역에서 관외로 이전하려는 B기업 관련해서 문제가 있다고 5분 발언을 하려고 하는데 지연 씨가 초안을 좀 써줘요.”

“네? 의원님, 죄송하지만 저는 그 기업에 대해 오늘 처음 들었는데요?”

“그냥 신문기사 참고하고 담당부서에 물어보면서 쓰면 되지 뭘.”


사람이 한번 속지, 두 번 속나.

그렇게 잘 모르고 썼다가 나중에 문제가 되면 내 핑계를 댈 것이 뻔했다.


“의원님께서 대략적이라도 초안을 주시면 제가 자료를 부서에 요구하거나 찾아드릴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잘 모르는 내용에 대해 공식적인 회의에서 의원님께서 말씀하실 내용을

대신 써 드릴 수는 없습니다.”

나는 정중하게 거절하고 사무실을 나왔다.


같은 정책지원관이지만 나와 정하윤이 일하는 방식은 많이 달랐고 특히 단체장과 반대편에 서 있던 박세준 의원과 조영만 의원은 정하윤과 일하는 것을 선호했다. 그녀는 단체장을 견제하는 것이 의회의 중요한 임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모든 의원들을 똑같이 도와주었던 것은 아니었다. 단체장과 같은 당이었던 오미경 의원과 김병수 의장에게는 나처럼 자기가 해야 할 부분만 도와주었다. 한편으로 이해가 가는 것이, 토론회를 연다고 하면 토론회 개요와 발제자, 토론자 섭외까지 알아서 하는 박세준 의원과는 달리 오미경 의원은 민원성으로 찾아오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토론회로 하고 싶다며 억지를 부렸다. 어떻게든 정하윤이 토론회를 열어주려 했지만 발제자와 토론자를 단 한 명도 섭외하지 못해 결국 불발된 적도 있었다.


능력이 부족한 오미경 의원에게도 잘못이 없진 않았지만 의원 모두가 시민들에게 보이는 성과가 중요한 상황에서 박세준 의원에게 유독 잘하는 정하윤이 눈엣가시처럼 보였으리라.

그러던 어느 날, 일이 터지고 말았다.


여러 지방의회에서 있었던 일들을 가상의 의회와 가명으로 만든 다큐픽션 형식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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