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다큐픽션] 회사 속의 정치학(4)

조심, 또 조심

by 꽃피랑

회기가 끝난 후, 박세준 의원이 고맙다며 우리 팀에 점심을 사겠다고 했다.

모두 어색하지만 애써 웃으면서 점심을 먹고 있을 때 그가 말했다.

‘이번에 아는 후배가 의회 관련 연구를 하고 있는데 혹시 정책지원관 중 한 분만 인터뷰해 줄 수 있을까요?’

쌀알이 설익은 듯한 크림리조토를 먹으며 무슨 내용의 연구일까? 왜 정책지원관의 인터뷰가 필요한 걸까?

생각하며 대답을 머뭇거리고 있을 때 정하윤은 자신도 석사 논문을 쓸 때 인터뷰할 사람 구하기가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며 선뜻하겠다고 대답했다.


그래. 그녀는 똑똑하고 의회에 대해서도 잘 아니까 나를 인터뷰하는 것보다 낫겠지 생각하며 넘어갔다.

며칠 뒤 학생처럼 보이는 사람이 정하윤을 찾아오고 나서 오미경 의원은 그녀를 사무실로 호출했다.

10분 정도 지났을까.


그녀는 빨개진 얼굴로 평소 같지 않게 욕설을 중얼거리며 사무실로 돌아왔다.

모두 일하다 말고 깜짝 놀라서 그녀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무슨 일이에요?’

‘진짜 내가 짜증 나서. 저 오늘 오미경 의원 때문에 여기 그만두려고요!’

그녀는 신경질적으로 책상에 넣어두었던 종이봉투를 꺼내서 책상 위에 집어던졌다.

‘아니, 좀 진정하고 도대체 왜 그러는지 이유를 좀 말해봐요.’

그녀는 찬물을 벌컥벌컥 마시더니 오미경 의원의 사무실에서 있었던 일들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항상 생글생글 웃던 오 의원의 얼굴은 평소답지 않게 차가웠다.

“정 보좌관, 여기 좀 앉아봐요.”

“네.”

“오늘 아까 이야기하던 사람, 어떻게 알고 만난 거지?”

“네? 박세준 의원님의 후배인데 의회 연구 관련해서 정책지원관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해서 만났는데요?”

“거짓말! 누군지 알고 만났잖아. 내가 그동안 정 보좌관 쭉 봐왔는데 저쪽 당 의원들에게만 잘해주고!

그 사람이 누군지 알아? 다음번에 그 당에서 공천받아서 이 지역에 출마할 사람이라고!

너도 사실 그쪽 당 사람이지? 내가 다 아니까 어서 실토해.”


오 의원은 강압적으로 다그쳤지만 가만히 있을 정하윤이 아니었다.

“의원님, 저 취조하시는 거예요? 제가 모르고 만났다고 했잖아요.

박 의원님께서 인터뷰 요청하실 때 저희 팀원들 다 있었으니까 지금 당장 저희 팀원들 다 불러서 확인하시죠!”

“아니. 보좌관 주제에 어디서 발뺌이야?”


정하윤은 어이가 없어서 비꼬듯이 한쪽 입꼬리만 올리면서 대답했다.

“보좌관이라뇨! 의원님은 아직도 보좌관과 지원관의 차이도 모르세요?

보좌진은 의원님 비서 업무를 하는 사람이지만

저는 의원님 비서가 아니라 공무원이고 정책지원을 하는 사람이라고요.”

그때 책상 위에 있던 오미경 의원의 핸드폰이 부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전화가 온 것이다.


어두웠던 화면이 켜지면서 오 의원이 지금까지의 대화를 녹취하고 있었다는 게 드러났다.

그걸 본 정하윤은 머리끝까지 화가 솟구쳐 올랐다.

하지만 오 의원에게 정하윤의 기분 따위는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핸드폰에 뜬 이름을 확인하고는 중요한 전화였는지 전화를 받으면서 그녀에게 나가라는 손짓을 했다.

그런 이유로 그녀는 화가 나서 사무실로 돌아온 것이었다.


모두들 원래 오 의원이 착하게 웃는 얼굴로 뒤통수치는 사람이라고,

나도 당했다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그녀를 위로했다.

‘그런 사람 때문에 회사를 그만두면 쓰나. 정 지원관만 손해지.

그러지 말고 잠시 산책이라도 하던지, 커피 마시고 와요.’


하지만 그녀가 나간 후, 모두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오 의원도 좀 심하긴 했지만 그동안 하윤 씨가 너무 한쪽 편만 들었으니 오해받을 만하지.

지금까지 박 의원님 등에 업고 팀장님에게도 대들더니 꼴좋다.’

‘여기서는 항상 의원들을 조심해야 돼. 애매하면 그냥 잘 모른다고 바보처럼 대답하는 게 제일이라니까.’

모두들 그렇게 작은 소리로 이야기하며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여러 지방의회에서 있었던 일들을 가상의 의회와 가명으로 만든 다큐픽션 형식의 글입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다큐픽션] 회사 속의 정치학(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