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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픽션] 지킬박사와 하이드(1)

청년의원의 두 얼굴

by 꽃피랑

박세준 의원은 우리 A의회의 유일한 청년의원으로 처음 당선되었을 때부터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공무원들은 의회에서 일한 경험도 있고 적극적인 그가 들어오면서 보다 합리적으로 의회가 달라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의원은 시민을 대표하는 사람이지만 도시개발부터 복지, 문화 등 모든 분야의 정책을 알 수는 없다.


그래서 대부분의 지방의회는 의원의 전문성 강화를 위해 의원 1인당 몇 백만 원의 연구예산을 배정한다.

하지만 A의회 의원들은 10년이 넘게 그런 예산이 있는 줄도 모르는 상태였고 당연히 한 번도 집행된 적이 없었다. 그러다가 박세준 의원이 들어오면서 연구가 시작되었고 이후 모든 의원들이 경쟁적으로 연구 외에도 정책간담회, 보도자료 작성 등을 하게 되었다.


나 역시 박세준 의원을 처음 봤을 때, 내심 의원들 중 그가 가장 낫다고 생각했다.

가끔 시간이 촉박하게 일을 주긴 하지만 워낙 열정과 일 욕심이 많아서 그런 것이라고 이해했다.

하지만 처음 열린 행정사무감사에서 그의 또 다른 모습을 보게 되었다.

아마 TV에서 국정감사. 소위 국감할 때 국회의원들이 윽박지르는 모습을 한 번쯤은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와 비슷하게 1년에 1번씩 열리는 행정사무감사(이하 행감)에서는 의원들이 지방자치단체가 사업을 적법하면서도 효율적으로 추진했는지 확인하고 문제가 있는 사안은 추가적으로 조사할 수 있다.


예전에는 행감 질문이 사전에 공유되고 형식적으로 운영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박 의원은 그렇게 해서는 제대로 된 감사가 이루어질 수 없다고 보았다.

행감 질문들의 보안이 중시되면서 나에게도 질문지가 공유되지 않았고 단편적으로 필요한 자료들만 정리해 달라고 요구할 뿐이었다.


드디어 행감이 열리는 첫날, 박 의원 뒤에 앉아 행감을 참관했다.

나는 발언자들이 너무 오래 발언하는 것을 막기 위해 타이머를 작동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 과정에서 박 의원이 마음에 안 드는 부서장들을 어떻게 다그치는지 볼 수 있었다.


우선은 아주 기본적이라 생각도 안 해봤던 것부터 물어본다.

예를 들어 감사과장에게 “감사과는 무엇을 하는 곳이죠?” 묻는 식이다.

너무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에 대해 질문하면 오히려 생각이 안 나거나 말이 막히기 마련이다.

그러면 그는 자기와 질문할 주제와 관련된 법령 혹은 조례를 알고 있냐고 묻는다.

부서장이 안다고 답변하면 몇조몇항을 읽어보라고 주문한다.


이미 30년 가까이 법과 조례를 보며 일했던 공무원에게 치욕스러운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이건 마치 고등학생에게 초등학교 1학년 교과서를 주면서

‘너 한글 잘 모르지? 여기 한번 읽어봐.’ 이렇게 대하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하지만 해당 조문을 읽고 나면 그때부터 본격적인 날벼락이 시작된다.

“이런 조항이 있는 걸 알면서도 왜 일을 그 따위로 한 겁니까!”

불호령이 떨어지고 온갖 질문들이 정신없이 치고 들어온다.

공직사회는 인사이동이 종종 있기 때문에 부임한 지 몇 달 되지 않은 과장들은 제대로 답변을 하지 못했다.

그러면 ‘그런 기본적인 것도 모르면서 업무를 제대로 할 수 있겠냐’ 거나

‘옆에 있는 팀장들은 뭐 하는 겁니까? 빨리 뒤에서 쪽지를 주시던가, 서포트를 좀 하세요!’

이렇게 소리를 지르기 일쑤였고 과장들은 연신 죄송하다며 어쩔 줄 몰라했다.

의원 뒤에 앉아서 듣기만 하는 나도 스트레스받는데 그 앞에 있던 과장님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하지만 놀라운 반전은 그다음이었다.



다음 화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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