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우족찜
태어나서 처음으로 외할아버지께 편지를 받았다. 믿기지 않는 현실에 연거푸 이름을 확인했다. 정말 내 이름이네. "할아버지가 편지를 써 주셨어!" 반응이 왜 이러냐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거든. 외할아버지는 편애하는 손주가 몇 있으셨는데, 나는 거기에 속하지 못했다. 순간 잊고 있었던 기억들이 비눗방울처럼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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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할아버지는 명절마다 용돈을 흰 봉투에 넣어서 주셨다. 금액은 차이가 없었지만, 봉투에 적힌 글자가 달랐다. 할아버지께서 아끼시는 손주들은 이름의 뜻 또한 꿰고 계셨기 때문에 봉투엔 한자가 적혀있었다. 언니와 나는 늘 한글 이름이었다. '몇 년이 지나면 우리 이름의 한자도 알아주시겠지.' 생각했지만 변화는 없었다.
봉투에 적힌 한자보다 부러웠던 건 할아버지의 품이었다. 할아버지의 무릎은 예뻐하시는 손주들 차지였다. 언니는 기대하지 말라고 했지만, 나는 매년 기대했다. '올해는 다를 거야.' 결론만 말하자면 언니의 말이 맞았다. 몇 년이 흘러도 편애는 그대로였고, 우리는 할아버지의 무관심에 점점 익숙해졌다.
글을 쓰며 까먹은 추억이 있진 않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떠오르는 거라곤 사랑받는 장손을 부러워하던 감정, '저도 사랑해 주시면 안 될까요?'라는 마음으로 달이 공전하듯 할아버지 주위를 맴돈 기억뿐이다.
나는 친할아버지를 무척 좋아했다. 노인복지에 관심을 가진 것도 친할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할아버지는 자식과 손주 모두를 동등하게 대해주셨다. 할아버지께서 치매를 앓다 돌아가셨을 땐, 마음속이 텅 비어버린 것만 같았다. 이때부터 노인복지와 관련된 봉사를 하기 시작했다. 연탄봉사, 독거어르신 도시락 배달, 무료급식소 봉사, 치매 주간보호센터, 요양원 봉사, 치매어르신과 장 보기 봉사 등 안 해 본 봉사가 없는 듯하다.
"할아버지가 보고 싶어." 어르신들을 볼 때마다 돌아가신 할아버지 생각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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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할아버지와 다르게, 손자만 예뻐하시는 외할아버지가 미웠다. 하지만 이 감정을 숨겼다. 어머니께서 속상해하실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냥 평소처럼 행동했다. 할아버지와 외식할 때마다 따라가고, 할아버지 집도 같이 치웠다. 하루는 할아버지가 없는 빈 집에서 어머니와 집을 치우는데 서운함이 밀려왔다. 이렇게 치워드려도 수고했단 소리 한 번 듣지 못했는 걸.
"엄마."
"응?"
할아버지댁에 가고 싶지 않아요.라는 말이 목구멍에 걸려 나오지 않았다.
자취를 하고 본가에도 드문드문 가니 외할아버지의 소식을 알 수가 없었다. 오래간만에 본가로 온 날, 두유와 과일 등을 챙기고 어머니와 함께 할아버지 댁으로 향했다. "왔니." 문을 열자마자 깜짝 놀랐다. 할아버지는 머리가 하얗게 세시고, 기운이 없어 보이셨다. 집으로 돌아가는데 만감이 교차하더라. '외할아버지 기운이 없으시던데.. 이대로 돌아가시면 어쩌지?' 덜컥 겁이 났다.
할아버지가 없는 삶은 상상하기도 싫어. 집에 도착하자마자, 어머니께 "자취방으로 돌아가기 전에 할아버지랑 밥 먹고 싶어요."라고 말씀드렸다. 할아버지와 조금이라도 더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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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댁 근처의 한식집에서 밥을 먹기로 했다. 어머니와 나는 할아버지 속도에 맞추어 천천히 걷는다. 이제 횡단보도만 건너면 도착이다. 어머니가 할아버지 손을 잡으신다. 횡단보도를 건널 땐 지금보다 속도를 내야 하기 때문이다. 내 도움도 필요하시려나? 어머니를 따라 손을 내밀었다. 텁. 할아버지는 내 손을 잡으셨다. 할아버지 체중을 지탱하며 말했다.
"할아버지 더워도 제 손 꼭 잡으세요."
식사 후 할아버지를 댁에 바래다 드리고 생각에 빠졌다. '지금껏 편애받는 사촌과 비교하며 할아버지를 미워만 했어. 근데 꼭 할아버지의 사랑을 받을 필요가 있나? 사랑받지 못하더라도 내가 할아버지를 사랑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잖아.'
미움을 걷어냈더니 사랑이 나타났다. 할아버지 연세가 여든이 넘으시고 나서야 내 마음을 알게 된 거다. 시간이 흘러야 알게 되는 것이 있다.
기다림의 미학, 우족찜을 해 먹자.
재료: 우족, 후추, 양파, 송주 불냉면 양념, 참기름, 스테비아, 통깨
조리 방법
우족을 최소 6시간 이상 물에 담가 피를 빼 준다.
중간중간 물은 꼭 갈아준다.
피를 뺀 우족을 초벌로 삶아준다.
우족에 붙어있는 털을 밀어준다.
우족을 다시 한번 삶아주는데, 잡내제거를 위해 통후추와 통양파를 같이 넣는다.
우족 상태를 보며 푹 끓여준다.
송주 불냉면 양념장에 참기름, 스테비아, 통깨, 후추를 취향껏 뿌려준다.
스텐볼에 우족과 양념장을 버무린다.
작은 팁
양념장을 버무린 우족을 프라이팬으로 다시 한번 익히면 양념이 눌어붙듯 흡수되어 더 맛있다.
쫄깃한 식감을 원한다면 식혀서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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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더 큰 사랑을 불러온다고 생각한다. 서먹하던 할아버지께 편지를 받은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