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뉴스를 본다

by 새벽책장


교실에서 아이들과 수업을 하다 보면 저학년은 우리나라 대통령 이름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일이 많다. 30명 중에 29명은 아예 깜깜하고, 그나마 한 명정도 비슷하게 이름을 말하거나 십 년 전 대통령 이름을 말하거나 그렇다.

4년 전만 해도 그랬다. 그때 나는 5학년 담임을 맡았는데, 5학년 사회는 한국사가 전반적으로 등장한다. 그래서 꼭 4학년 겨울방학 때까지는 우리나라 역사에 대해 어느 정도 배경지식을 갖춰주는 것이 좋다. 학군지에 따라서는 다를 수도 있지만, 평범했던 우리 학교를 예로 들자면 세종대왕과 이순신 빼고는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아, 가끔 유관순과 안중근은 들어봤다고는 하니, 그 두 분까지.


얼마 전 명절에 친척들이 다 모인 시댁에서 남편은 티브이를 보다가 큰아이에게 물었다.

"일호야, 저기 화면에 있는 사람 중에 대통령이 누군지 알아?"

"가운데 있는 사람?"

"어 맞았어. 그럼 그 사람 이름이 뭐야?"

아이는 삼초 정도 생각한 후 대답했다.

"아, 뭐더라? 유... 유... 유재석?"

아.. '석'이 들어가는 건 비슷하니까 반은 통과라고 해야 하나? 난감했다.




그래서 나는 우리 나이로 10살 8살 된 남매들과 올해부터 뉴스를 종종 보기로 다짐했다.

이번 튀르키예 지진이 전 세계를 슬프게 하고 있으니, 뉴스 꼭지에 등장하는 튀르키예의 참담함 모습을 함께 보며 아나운서의 멘트에 귀 기울였다.

약혼녀를 잃고 슬픔에 빠진 청년의 모습도 보면서 아직 자막을 잘 못 읽는 아이들을 위해 자막을 읽어주고 설명도 해주었다.


"얘들아, 튀르키예에는 저렇게 아이를 잃은 부모도 많고, 부모를 잃은 아이들도 많고, 온 가족이 다 죽은 사람들도 많대. 얼마나 슬플까?"

일호가 대답한다.

"나는 엄마아빠가 다 죽은 애들이 제일 불쌍해."

엄마껌딱지의 전형적인 대답이 돌아온다.

이호가 대답한다.

"그런 애들은 누가 입양하겠지."

, 이성적인 여덟 살이다.

"그래서 엄마는 아까 튀르키예에 후원하려고 만원 보냈어. 너희들은 어떻게 할래? 대신, 후원을 하려면 자기가 하고 싶은 거 먹고 싶은 거 다 쓰면서 보내는 건 의미가 없어. 그들을 위해서 먹고 싶은 거 참고 그 돈으로 보내주는 거야."

일호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한다.

"나는 안 할래." 응, 너답다.

이호는 한참을 생각하다가 말한다.

"나는 포켓몬 카드 안 살래."

"아, 포켓몬 카드 살 계획이 있었어? 좋아. 그럼 포켓몬 카드 안 사는 대신 친구들에게 얼마를 후원할래?"

"십만 원."

"어? 십만 원은 너무 많은 거 같은데, 포켓몬 카드를 십만 원어치 살건 아니었잖아."

둘째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뉴스가 끝나고 나는 설거지를 하러 갔다.

둘째는 자기가 받은 용돈과 세뱃돈을 자기 방에 숨겨두는 아이다. 나도 어디에 그 돈이 숨겨져 있는지 모른다. 이번에 세뱃돈으로 받은 빳빳한 오만 원권을 두 장 들고 오더니 나에게 내밀었다.

"엄마 이거 지진난 친구들에게 보내줘."

"아이고, 우리 이호가 돈을 꺼내왔네. 엄마 생각에 십만 원은 너무 많은 것 같으니까. 오만 원으로 하자. 대신 오만 원을 안 쓰고, 사고 싶은 거 있을 때 참는 것도 잊지 마."


후원을 안 하고 싶은 일호는 나름 이유가 있다. 욕심이 많은 아이라서 억지로 시키고 싶지는 않다. 기다려 주어야 하는 아이다. 오늘도 우리 아이에 대해서 다시 느꼈다. 욕심이 많다고 아이를 미워하지는 않겠다는 다짐도 함께 말이다.

대신 마음이 여리고 공감능력이 높은 이호는 당연히 후원을 하겠다고 나설 줄 알았다. 늘 그렇듯, 대책이 없는 게 문제지만.


사실 나조차도 뉴스를 제대로 보지 못한 지 오래되었다. 스마트폰이 대중화대면서는 인터넷 뉴스를 살펴보거나 검색하는 게 전부였다. 9시 뉴스인지, 8시 뉴스인지도 몰라서 첫날에는 뉴스를 뒷부분만 보는 실수를 범했다.

그리고 고백하자면, 튀르키예가 터키의 새로운 이름이라는 것도 이번에 알았다.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아주 작은 나라인가 보구나, 그랬지 뭔가.


그다음 날은 같이 도서관에 가기로 한 날이었다.

마침 도서관 가는 길에 둘째가 지진이야기를 물었다.

"엄마 지진은 왜 나는 거야?"

"지진에 대해 알고 싶으면 설명할 거리가 너무 많아. 간단히 말해서는 땅이 움직이기 때문인데, 그럼 지구에 대해서 좀 알아야 할 거 같아. 도서관 가서 지진 책도 한 권 빌려볼까?"

지금 당장 그 대답을 알고 싶었던 이호는 마음이 찝찝해진 느낌이었지만 알았다고 했다.

도서관에서는 엉덩이탐정만 들여다보고 있었지만, 괜찮다. 지진책은 내가 빌렸으니까.




뉴스를 보며 일호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나는 우리나라에서 태어난 게 다행이다."

다른 이의 불행을 보면서 다행임을 느끼게 된 아이. 잘 가는 게 맞는지 궁금했지만 그러한 감정 또한 그 아이의 몫이니, 자신의 처지를 감사히 여길 줄 아는 마음이 들었다면 점차 주변으로 눈을 돌릴 수 있는 아이로 커갈 수 있다는 희망이라고 생각해 보려 한다.


아이들과 함께 볼 뉴스들이 참혹하고 슬픈 것들로만 도배되지 않고, 아름다운 사건, 미담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덧, 튀르키예와 우크라이나 전쟁피해자를 후원하는 곳은 인터넷에 많이 있습니다. 오늘은 아이들과 튀르키예에 보낼 물품을 모아보려 합니다. 사실 저조차도 뉴스를 접하고는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우리 집 일호만의 이야기는 아니겠지요. 미안하면서도 다행이면서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일인 것 같습니다. 모두의 하루가 무사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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