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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에 정답이 있나요
아침밥을 먹이는 일
by
새벽책장
Feb 4. 2023
"엄마 아침 먹기 싫어. 아침에는 입맛이 없단 말이야."
"그럼 30분만 있다가 먹어봐. 아침을 먹어야 힘이 나지."
우리 집 아침 식사 시간에 항상 이루어지는 대화 패턴이다.
하루 세끼에 집착하고 열심히 먹여 키웠는데 커갈수록 일호는 아침 먹기를 힘들어하고 있었다.
휴일이든 평일이든 무조건 세끼를 꼬박꼬박 먹이던 것이 나의 자부심이었는데 말이다.
고등학교를 한 시간 거리로 다니던 나는 7시에 스쿨버스를 탔기 때문에 6시 30분에는 꼭 아침밥을 먹어야 했다. 새벽마다 나보다 먼저 일어나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내며 풍겨오던 엄마의 밥냄새가 나의 기상 알람이었다.
결혼하기 전에는 늘 엄마의 아침밥을 먹고 출근을 했다. 집에 오면 엄마의 저녁밥이 차려져 있던 당연하던 풍경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대학교 시절에도 그렇게 원하던 자취생활을 해보지 못하고 지하철이 닿는 곳으로 진학을 했다. 그래서 엄마의 밥은 늘 당연한 것이었다.
한국인의 밥상하면 떠오르는 그런 종류의 음식이 우리 집의 주메뉴였다. 거의 된장찌개, 청국장, 김치찌개, 두부 계란국. 거기에 손이 잘 가지 않던 밑반찬들이 돌아가며 올라왔다.
중학교, 고등학교 6년의 도시락에는 엄마의 멸치볶음과 김계란말이, 김치가 하루 걸러 하루씩 들어가 있었고 김계란말이는 너무나도 지겨워 나는 지금도 먹지 않는다.
엄마의 아침밥은 내 키를 키웠고, 나를 대학에 보냈고, 내가 출근을 할 수 있도록 만들었는데, 그 밥을 지겨운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니, 나는 참 배은망덕하기도 하다.
생각해 보면 나는 밥을 잘 먹던 아이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딱히 좋아하는 음식이 없었고 먹고 싶다고 생각나는 음식도 없다. 그냥 대체적으로 모든 음식이 맛있지도 않고 맛없지도 않았다. 눈앞에 있으니까 먹었다.
특히 새벽녘에 먹는 아침밥은 고역이었다. 누구나 한 번쯤은 생각해 봤을, 알약 하나만 먹으면 한 끼 해결되는 그런 시대는 언제 오는 걸까라는 생각을 고등학교 시절 내내 했다. 그리고 그런 시대가 아직도 오지 않은 게 아쉽다.
그런 내가 아이들을 낳고 키우다 보니 우리 엄마처럼 아침밥에 연연하고 있었다. 어린 시절에는 밥을 안 먹어서 속 썩이는 일이 없었는데, 조금 컸다고 아침마다 밥을 먹이는 것이 전쟁이 되어버렸다.
김에 싸 먹거나 시리얼을 먹거나, 떡도 먹여보고 고구마도 먹여봤다. 이런 것들도 대체적으로 하루 이틀 만에 질려했다. 볶음밥이나 유부초밥도 어떤 날은 먹지만 어떤 날은 아예 손도 대지 않았다.
그러다가 '아침에 먹으면 좋은 음식'이라는 블로그를 보게 되었는데 감자, 사과, 양배추, 블루베리 등이 좋다고 했다.
건강식인데 맛이 없다고 타박당했다
그래서 오늘 아침은 감자를 삶고 계란을 구워 사과, 블루베리를 대령했다.
아이들은 역시나 삶은 감자를 잘 먹지 않았다. 그래도 노른자를 뺀 계란 흰자를 뚝딱, 블루베리를 후루룩 먹었다. 야심 차게 준비한 감자를 싫어하니 내일 아침은 또 무엇을 먹여야 할지 하루 만에 이번 메뉴도 실패다.
엄마의 집밥을 그리워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딱히 그립지가 않다. 지금도 엄마가 해주는 밥이 그렇게 맛있지 않은 이유는 그 시절 억지로 먹어댔던 밥에 대한 기억이 남아 있어서 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을 억지로 먹이기가 힘들다. 물론 아이들이 먹지 않고 버티는데 입을 열어서 욱여넣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그렇기도 하다. 솜씨 좋게 아침식사를 준비하는 주부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고, 그렇게까지는 하고 싶지 않기도 한 양가감정이 든다.
얼마 전 엄마가 막내이모와 제주도 여행을 다녀오셨다. 저녁비행기로 김포공항에 들어오시는 바람에 지방까지 가실 수 없어서 우리 집에 와서 주무시고 가셨다.
다음날 아침은 내가 제일 자신 있는 등갈비찜과 미역국으로 차려드렸다. 엄마는 아침부터 무슨 고기냐고 타박하셨지만 생각보다 맛있게 다 드셨고, 이번 설에 나에게 등갈비찜을 해보라고 부엌을 내주셨다. 아이러니하게도 요리 고수 새언니가 다 해버렸지만 말이다.
그래도 엄마가 내 음식을 드시고 기억했다는 게 신기했다. 그리고 엄마에게 아침식사를 차려드렸던 것이 처음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뜨끔했다.
이제는 나이가 든 엄마에게 내가 아침밥을 차려드릴 수 있다는 것이
,
시절을 흘러 겪게 되는 당연한 일처럼 느껴졌다가, 아침을 차려드릴 엄마가 안 계시다면 그런 호사도 누릴 수 없다는 생각에 잠시 등골이 서늘해졌다. 배은망덕한 딸이라도 그런 건 싫으니까 말이다.
지겹도록 먹었던
,
엄마가 차려주신 아침밥 덕분에 나는 또 내 자식의 아침밥을 차려준다.
그러니 아침밥을 포기할 수가 없다. 집을 떠나 자신만의 우주에서 살게 될 아이들에게 지겹더라도 엄마의 밥을 남겨주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보다는 낫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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