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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순이는 즐겁다

by 새벽책장

얼마 전 남편이 코로나에 걸렸다.

그는 혼자 생활하는 숙소가 있고, 그곳에서 일주일 동안 자가격리를 했다.

매일의 통화 속에서 그의 지루함을 느낄 수 있었고, 나는 그런 그가 정용진보다 이재용보다 전지현보다 더 부러웠다.

나도 일주일만 아무도 없는 숙소에 자가격리를 당하고 싶다.


작년 3월 우리 집 남매들과 나는 코로나에 걸렸다.

내가 그렇게 가기 싫어하는 캠핑장에 그날 나는 가지 않을 수 있는 자유를 얻었고, 에헤라디야 즐거운 자유부인을 누렸다. 그것이 나의 마지막 자유일 줄이야.

월요일 아이들을 등원, 등교시키고 나자 남편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같이 놀았던 캠핑장 아이가 코로나에 걸렸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사실 근무 중 코로나에 걸렸을 때 가장 두려웠던 점은 나의 복무였다. 그리고 내가 코로나라면, 우리 반 아이들이 다 검사를 해야 하는데 그때 쏟아질 무시무시한 눈총들이 두려워서 코로나 2년간 많이 조심하고 지냈다.

하지만 '휴직'이 모든 것을 무장해제 시켰던가, 나는 마음이 크게 동요되지 않았다.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것을 인지하는 정도. 어쩜 이렇게 휴직을 하자마자 코로나가 찾아왔는지, 너 참 시기적절했다고 코로나를 칭찬하는 마음까지 들었지 뭔가.

그래도 아이들의 같은 반 친구들에게 민폐를 끼칠 수는 없으니 재빨리 하교시키고 그날부터 우리는 집콕생활에 들어갔다.

역시나 이틀 후 아이들은 열이 나기 시작했고, 양성반응을 얻었다.


아이들이 다 나아갈 때쯤 나의 증상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아이들을 키워야 하는 엄마라는 신분이지 않은가. 열이 나고 어지러워도 세끼 꼬박꼬박 챙겨 먹이고 책도 읽어주고, 청소도 하고, 빨래도 개는, 평화로운 시절을 보냈다.

아이들이 양성받고 열흘, 나는 조금 늦게 시작되어서 우리가 집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기간은 더 추가되었다. 그렇게 거의 보름정도 자가격리를 했다.

정말로 신기한 것은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는 그 시간들이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이들과 지지고 볶는 생활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제외하고는 밖에 나가지 못하는 스트레스는 하나도 없었다.

심지어 아이들이 놀이터에 나가지 못하는 걸 스스로 알고 있으니, 나가자고 보채지 않아서 너무 행복할 지경이었다.


집에서도 놀거리가 택배로 배송되는 세상, 만세


그렇게 벚꽃이 피는 사이 그 온화한 바람은 창문으로만 느껴도 충분한 봄날이었다.


요즘에는 스마트폰 몇 번 두드리면 모든 생필품부터 신선한 식재료까지 집 앞으로 가져다주는 그야말로 "집순이 맞춤 시대"에 살고 있다.

넷플릭스가 있고, 전자책이 있으며, 필요하다면 종이책도 이틀이면 도착한다.

겨우 일주일 자가격리 하는 걸 가지고, 지겹다고 몸을 베베 꼬는 남편을 보고 있자니, 책이라도 사서 읽어라 이 인간아, 소리 지르고 싶었지만, 아픈 사람에게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라 힘들겠다는 영혼 없는 리액션만 취해주었다.




집순이 엄마라서 딱 한 가지 안 좋은 점은 아이들을 주말마다 여기저기 체험시키는 엄마들을 보면 살짝 자괴감을 느끼고 죄책감이 든다는 것이다.

얼마 전 아들의 의대 합격 소식을 전한 선배 동료에게 단톡방에서 젊은 엄마들은 빨리 육아팁을 내놓으라고 아우성을 쳤다. 그분이 잘했다고 생각한 몇 가지를 이야기해 주셨는데, 그중에 가장 마음이 쓰였던 것이 바로 그 체험활동들이었다. 주말에는 여기저기 좋다는 체험활동, 박물관 등에 많이 데리고 다니고, 방학 때는 한 달 살기도 종종 떠나서 그 한 달은 공부도 안 시키고 무조건 뛰어놀게만 했다는 것이다. 아, 그래도 책은 많이 봤다고 한다.

이런 체험활동들은 그 자체보다는 사실 부모와 아이들이 함께 계획하면서 나누는 대화, 생각의 폭이 확장되는 그 경험들이 더 중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집순이라서 좋은 점 또 한 가지는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과 대화가 많다는 점이 떠올랐다. 그래도 밖으로 나가 경험하고 생각하는 시간들을 제공해 주지 못하는 점은 못내 아쉬웠다.


그래서 집순이 엄마이지만 이번 여름방학 때는 우리 집 일호의 소원대로 비행기를 한 번 타보려고 리브애니웨어 앱을 깔았다. 그 녀석은 비행기만 타면 해외든 국내든 별로 개의치 않으니 국내로 한달살이를 계획해 보려 한다.

와, 리브애니웨어에 떠있는 한달살이 숙소들은 정말이지 눈이 휘둥그레진다.

어, 나 집순이 맞나? 왜, 벌써 설레고 난리야.

집순이의 좋은 점 마지막은, '가끔' 떠나기 때문에 그 한 번의 '가끔'이 주는 설렘이 꽤나 크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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