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지류로 된 치킨 상품권을 선물 받았다. 교촌치킨이었다. 우리 집 어린이들은 떡볶이가 서비스로 오는 페리카나 치킨을 선호하기 때문에 이 쿠폰의 존재를 잠시 잊고 있었다.
그러다가 이호가 치킨을 꼭 시켜 먹고 싶다고 이틀 동안 졸라대는 통에 상품권이 생각나서 스마트폰으로 교촌치킨 앱까지 다운로드하고 난리를 쳤다.
무엇인가 온라인으로 새로운 것을 할 때면 참 어렵게 느껴지는 나이가 되어버렸다. 번거롭고 귀찮다. 그래도 전화에 울렁증이 있는 나는 어찌 되었든 온라인으로 주문하는 것이 심적으로 편하기 때문에 끝까지 앱을 붙들고 있다가 쿠폰 등록하는 화면으로 간신히 진입할 수 있었다.
그런데 쿠폰 번호를 넣고 해 봐도, 바코드를 인식시켜 봐도 계속 오류가 떴다. 앱 까는데 한세월, 쿠폰 등록하는데 또 한세월 지나다 보니 진이 다 빠져버렸다.
"유효하지 않은 번호입니다."
이유는 모르겠다. 결국 열번의 오류가 나서 차단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원래대로 떡볶이와 함께 오는 페리카나 치킨을 시켰고, 나의 찝찝함과는 상관없이 맛있게들 먹는 모습을 보니 스트레스가 조금은 가라앉았다.
아이들이 치킨을 뜯을 때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았다. 지류 상품권은 매장에 전화를 해서 등록을 하거나 직접 매장으로 가야만 한다는 지식인들의 답변을 발견했다.
아, 그렇구나. 결국 전화를 해야만 사용가능한 거였어. 그럼 이건 남편이 있을 때 사용해야겠다. 전화는 불편하니까 말이다.
사실 이 쿠폰은 시어머니께서 주신 것이었다. 어머님을 뵈러 가는 일은 자주 없다.
신혼 때에는 임신한 몸으로도 편도 2~3시간 거리를 한 달에 두 번씩 다녔는데, 그때 배가 많이 뭉치고 힘들었음에도 남편이 가자는 소리에 싫다고 한 번을 못했는지 모르겠다. 결국 조산을 했는데, 이게 원인은 아니겠지만 속상하고 슬펐던 나는 온갖 곳에서 원인을 찾다 보니 이제 시가에 자주 가지 않아야겠다는 생각까지 했었다.
임신 8개월이었고, 발이 퉁퉁 부어서 맞는 신발이 없이 남자 슬리퍼를 신고 다니던 나에게, 운동을 많이 해야 하니까, 아들아 너는 차 끌고 저기 다리 반대편에 가있고, 며느리랑 나는 걸어서 여기 다리 위를 걷자, 그 말이 십 년이 지난 지금도 왜 계속 생각나는지 모르겠다.
사실 시어머니는 다정하고 정이 많으신 분이시다. 그래서 갈 때마다 소소한 생필품들을 많이 챙겨주시곤 하시는데, 주로 다른 사람들이 사용하던 것 중에 쓸만한 것을 얻어오실 때가 많다.
결혼식도 하기 전에 신혼여행 가서 입으라고 시누이가 입던 수영복과 비치룩을 한 보따리 챙겨주셨는데, 그때는 정신도 없고 그런가 보다 했지만 나도 예쁜 수영복을 사 입고 싶었던 게 떠오를 때면 기분이 좋지 않다.
또 손님접대용으로 산 그릇세트를 이제는 사용하지 않는다며 우리 신혼집에 두고 가셨다. 꽃무늬가 있는 그릇세트인데, 밥그릇 국그릇만 열개짜리 세트라서 굉장히 많다. 거기에 접시도 크기별로 다양했다. 나도 백화점에서 그릇세트를 샀지만, 이 손님접대용 세트가 아직도 쓸만하다는 이유로 결혼 십 년 동안 다른 그릇을 사지도 못하고 있다.
뭐, 이런 것들은 나의 궁상력과 맞물려 시너지를 더욱 발휘한 것이겠지. 내가 싫으면 안 쓰고 버리면 그만이고, 내 취향에 맞는 걸 사면 될 텐데 말이다. 있는 걸 잘 버리지 못하는 내 성격 탓을 해야겠지만 시어머니가 주시는 것들이 썩 유쾌하지는 않았다.
이번 설에는 심지어 입어보신 팬티를 주셨다. 어머님이 입어보셨는데, 너무 커서 나에게 맞겠다며.
나는 키가 큰 편이고 어머님은 키가 작으시다. 그래서인지 본인에게 큰 옷들을 나에게 주시고는 하시는데, 그게 또 맞을 때면 기분이 별로 좋지 않다. 남편은 "엄마한테 큰게 부인한테 맞아? 부인 똥배 나왔어?"라는 식으로 놀려먹곤 한다. 주둥이를 확 마.
이번 팬티는 조금 충격적이었다. 그것도 찐 분홍이었는데, 나는 검은색 팬티만 입기 때문에 그 찐 분홍 팬티 하나가 내 서랍장에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뽐낼 때면 버리고 싶다가도, 물건을 잘 못 버리는 나로서는 난감해서 못 본 척하고 서랍장을 닫을 뿐이다.
그러다 보니 나는 이번 치킨상품권도 은연중에 "어머님이 사용하신 상품권을 주셨네."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게 사용한 상품권이라는 증거를 찾아서 남편에게 말해야지, 아무렇지 않은 듯 그냥 툭 무심히 말해야지, 어머님이 자꾸 사용하시던 걸 주신다고 꼭 말해야지. 그런 마음으로 인터넷에서 그 답을 찾아 헤맸던 것이다.
결론은 내가 전화를 해서 주문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지만 말이다.
교촌 회사는 편리한 앱이 있는데도, 왜 굳이 등록되지도 않는 상품권을 만들었을까. 나 같은 사람 골탕 먹이려고 만든 것은 아닐 텐데, 골이 났다.
어머님도 나를 골탕 먹이려고 일부러 사용하던 것들을 주시는 건 아닐 텐데 자꾸만 골이 나는 며느리의 심정은 내가 베베 꼬인 거겠지.
요기요 어플 한 번이면 끝났을 일을 한 시간 동안 상품권과 앱을 붙들고 씨름하느라고 짜증이 솟구쳤던 나는, 유효하지 않은 번호처럼 아직도 피가 섞이지 않은 남편의 식구들과 맞춰가느라고 힘이 드는 날이 있다.
나는 뭐, 어머님에게 다 좋은 며느리일까. 욕을 한 바가지 하고 다니셔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연락도 안 하고 살갑지도 않은 며느리일 뿐이니, 그냥 입 닫고 조용히 있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