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육아템이라고 할 수 있는 무선 청소기. 청소기가 육아템인 이유는 아이들이 과자 부스러기를 흘려도 화를 내지 않을 수 있는 마음을 선사해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들이 아주 어릴 때, 큰 마음먹고 구매했던 코드제로 청소기는 큰 마음을 먹은 만큼 인터넷 최저가로 구매했고, 그 이름값을 하듯 고장 한 번 나지 않고 잘 사용해 왔다.
그러나 두 달 전에 청소기 헤드를 끼우는 부분의 한쪽이 부러져 버렸다. 청소기를 밀 때마다 그쪽이 빠지지 않도록 살살 밀어야 했고, 그러다가도 갑자기 헤드가 빠져버려서 중간중간 청소를 멈추고 그걸 끼워 넣어야 해서 짜증이 날 때가 많았다. A/S를 받으러 갈까 하다가도 구매한 지 오래됐기도 하고, 어차피 유상으로 고치거나 헤드를 교체해야 할 것 같아, 센터에 가는 일을 미루고 있었다.
헤드만 구매할까 알아보니 인터넷으로도 십만 원이 넘는 구매가격이 나를 망설이게 했다.
그날따라 엘리베이터를 타고 싶었다. 요즘 계단으로 오르내리기를 하는데, 그날은 마침 바로 아래층에 엘리베이터가 세워져 있길래 버튼을 잽싸게 누르고 1층 버튼을 눌렀다.
여유롭게 핸드폰을 보고 있었는데, 11층에서 엘리베이터가 섰다. 가끔 인사만 나누는, 나보다 나이가 조금 많아 보이는 어머님께서 타셨다. 그녀의 왼손에는 우리 집에 있는 것과 똑같은 코드제로 청소기가, 오른손에는 청소기 거치대가 들려있었다.
11층에서 1층까지 내려가는 그 짧은 시간 동안 나는 수많은 생각을 했다.
'저것은 버리려고 하는 것일까, 아니면 어디 가져가시는 걸까, 물어볼까 말까, 저 청소기 헤드는 우리 집에 있는 것보다 더 관리가 잘 된 듯 깨끗한데, 너무 깨끗해, 버리는 게 아닐 거야, 아니야 그래도 물어나 보자.'
"청소기 어디 가져가시는 거예요?"
"아, 네 버리려고요. 작동이 됐다 안 됐다 하네요. 고쳐서 쓸까 했는데, 아들이 이번달에 첫 월급 탔다고 새 청소기를 사줬네요. 호호호호. 그래서 그냥 버리려고요."
"어머나, 그렇게 장성한 아드님이 계셨어요? 제 또래인 줄 알았는데, 호호호호, 청소기도 사주시고 아드님이 너무 훌륭하시네요. 아드님 취업 축하드려요."
"아이고, 뭐 월급도 얼마 못 받아놓고 청소기를 사주네요. 사실 제가 청소기 사달라고 했거든요. 고마워요. 홍홍홍홍."
어머님 기분이 좋아 보이신다. 그래 지금이야. 나는 용기를 내서 말했다.
"그런데 저희꺼랑 그거 모델이 똑같은 거 같은데, 저희 청소기 헤드가 고장이 났거든요. 그 헤드만 저한테 버려주시면 안 되실까요?"
"어머나 그렇구나. 그래요. 그럼. 저녁에 아들이 폐기물 스티커 붙여놓는다고 일단 내놓으라고 하더라고요. 혹시 누가 가져갈 수도 있다고."
"아, 그럼 헤드만 빼가면 아무도 안 가져갈 텐데, 괜찮으실까요?"
"괜찮아요. 혹시 본체만 필요한 사람이 있을 수도 있잖아요. "
하며 그녀는 그 자리에서 청소기 헤드를 바로 빼서 나에게 주셨다.
"어머, 너무 감사합니다. 완전 득템이에요."
"아니에요. 어차피 버리려던 건데요."
마침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했다. 그녀는 분리수거장으로 향했고, 나는 다시 우리 층 버튼을 눌렀다.
원래 그렇게 용기 있는 사람이 아니다. 내성적이고 사람들에게 쉽게 말 붙이는 스타일도 아닌데, 필요한 물건 앞에서는 얼굴이 두꺼워질 수 있는 나이가 된 내가 대견하기도 했고, 득템으로 인해서 몹시도 기분이 좋았다.
용기 있는 자가 뭐라도 얻을 수 있나 보다.
좌:새로 얻은 헤드 / 우:부러진 기존 헤드
모든 초고는 쓰레기다 - 헤밍웨이 -
브런치 작가라는 타이틀을 얻고, 이 글로써 백편의 쓰레기를 발행하게 되었다. 나의 쓰레기들은 매번 발행버튼을 누르기 직전에 망설이게 만든다. 단 한 번도 흔쾌히 발행해 본 적이 없다. 지금도 발행취소를 누르고 싶은 글들이 수두룩 빽빽이다. 그러나 백 편을 달성하기 위해서 취소하지 않았다.
누군가에게는 쓰레기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너무나도 마침맞던 물건일 수 있다.
나의 글들이 누군가에게는 쓰레기이지만, 지나가는 누군가에게 단 한순간이라도 위로가 되었다면 그것이 바로 글을 쓰는 이유가 아닐까.
나는 용기가 있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쓰레기를 발행할 수 있는 용기를 내었다. 그래서 나의 브런치에는 백편의 글이 쌓였다.
용기 내어 말해보자, "그거 필요 없으시면 저에게 버려주세요."
나의 쓰레기가 누군가에게는 필요한 글이 될 수 있기를. 그 누군가가 단 한 명이라도 좋고, 나 혼자만이여도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