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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전화를 씹었다

by 새벽책장

주말부부인 우리는 주중에 각자의 삶을 살다가 주말에만 만나는데, 이건 좋기도 하고 안 좋기도 하다. 주말에 집에 온다고 딱히 집안일을 하거나 아이들과 놀아주지 않으니, 그냥 나는 어른 한 명분의 밥을 더 해야 할 뿐이라서 사실 더 힘들다.

지난 주말에도 기분이 매우 좋지 않았던 나는 아들과 축구를 하고 나서 배드민턴을 치느라 허리와 다리가 쑤시고 아픈 월요일을 보냈다. 보통 축구는 아빠랑 같이 하지 않나 싶은 생각은 하지 않기로 한다. 생각을 하면 화만 나고 스트레스 지수가 상승하니까, 그냥 엄마랑 하는 걸로 정신승리를 해본다.

어차피 축구공 차는 것도 내가 더 잘하는 것 같으니 딱히 아빠랑 축구하고 오라고 내보냈다가 신경질 부리는 아빠 덕분에 아이 기분만 상할 수 있다.


브런치에서는 꾸준히 "이혼"에 대한 글이 핫하다. 브런치뿐만 아니라 요즘은 이혼이라는 단어가 그렇게 낯설고 어려운 단어가 아니니, 힘이 들고 외롭고 괴로운 날은 그냥 나도 이혼하고 글이나 푸짐하게 써보고 싶을 지경이다. 이런일로 이혼한다면 대한민국 모든 부부가 이혼하겠지만 말이다. 그만큼 내가 외롭다는 표현을 어찌 에둘러 할 수 있을까. 봄이 되니 더욱 외롭다.


딱히 싸운 건 아니지만, 말 한마디 하지 않는 내가 기분 나쁜 티를 내면 그는 오히려 자기가 더 꽁해서 되려 아무 말도 안 한다. 이번에는 나도 먼저 말하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꼭 필요한 말을 제외하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꼭 필요한 말은 사실 그다지 필요하지 않은 말이었던 것 같아서 왠지 말해놓고 자존심이 상한다. 예를 들면 "커피 마실래?" 라던지, "같이 나갈래?" 라던지.

뜨거운 물을 받아서 커피를 타줬고, 아이들과 함께 나간 놀이터에는 5분 앉아 있다가 그는 어느새 사라졌다. 그리고 집에 오니 라면 냄새가 났다. 혼자 들어와서 라면을 먹은 것은 우리 세 명을 모두 무시한 행동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정색을 하게 되었다.

"혼자 라면 먹었어?"

"응."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대답하는 그를 바라보는데 왜 눈물이 나지.

"왜 혼자 먹었어?"

"그럼 혼자 먹지 안 먹어?"

늘 이런 식이다.




재작년에 둘째가 전염성 피부염에 걸려서 유치원 등원을 할 수 없었을 때, 전화 너머의 그는 그냥 유치원 보내야지 어떡하냐는 말만 되뇌었다. 나는 유치원에 등원시킬 수는 없어서 데리고 출근을 했다. 그날 점심도 못 먹고, 아이들을 데리고 일을 했다. 얼마나 정신이 없었느냐면 퇴근하고 차 뒷문을 활짝 열고 들어와서 친절한 주민분이 문자를 보내주셨다. 살다 살다 차문을 열어놓고 내린 건 처음이었다.


그 상황에서 300Km 떨어져 있는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냥 "힘들겠다. 어떡하냐." 그 말을 하는 게 그렇게 어려웠을까. 등원을 시킬 수 없는 사정을 뻔히 알면서 결국 그날 어떻게 했는지 전혀 물어보지도 않았다. "힘들었겠다."는 말이 왜 어렵지.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가족에게 미안해하지 않던 시아버지를 결국 닮는구나. 아무리 제 아버지를 미워하더라도 아들은 아빠를 닮는다더니 그 말을 우습게 알았던 내 발등을 내가 찍는건가, 싶다.




그렇게 이번주는 그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더 꽁해있는 건 그가 아니고 나일지도 모르겠다.

심은 데 꽁난다는 말의 뜻을 보여주고 싶어서 안달을 한번 해본다.

또 주말이 다가오니 속이 답답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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