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학교에서 학부모 공개수업을 했다. 두 아이의 수업이 같은 시간대에 진행되니,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보통은 형과 아우의 교실로 왔다 갔다 하며 이리 기웃 저리 기웃하는 게 통상적인 관례(?)지만 내가 잘 못 키웠는지 우리 큰 아이는 단 1초도 엄마가 없으면 안 된다고 하길래, 바쁜 아빠에게 강제 반차를 쓰도록 해서 위기를 모면했다.
아이들 수업을 반반씩 보기로 하고 나는 먼저 큰 아이의 교실로 향했다. '어린이들의 꿈'에 대한 수업이었다. 수업에 앞서 선생님께서는 동기유발로 "부모님의 꿈"에 대해 발표해 주실 분이 계신지, 장화 신은 고양이의 눈을 하고 엄마아빠할머니할아버지를 쳐다보셨다. 나는 사람들 앞에 나서는 걸 몹시도 싫어하고 뒤에 숨어 있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다. 그러니 이런 자리에서의 발표는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 일. 하지만 교실은 정적에 휩싸였고, 아이들은 자기 엄마 아빠를 바라봤으며 나는 선생님의 간절한 표정을 봤다.
손을 번쩍 들었다. 그렇게 홀린 듯 나의 꿈을 발표하고 말았다.
"저는 어렸을 때 꿈은 아니고, 요즘 꿈이 생겼는데, 작가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글을 쓰고 있습니다."
말하고 나니 부끄러웠지만 내 뒤를 잇는 발표자는 더 이상 없었고, 그래도 한 명이라도 발표를 해주었으니 수업은 진행되었다. 뭐, 내 딴에는 학부모 공개수업인데 분위기 망치면 안 되니 선생님을 도왔다고 생각했으나, 어떤 엄마들은 나를 어떻게 봤을지 상상하니 흔한 말로 시간을 되돌리고 싶었다. 하지만 시간을 되돌려도 나는 아마 발표를 했을 것 같다.
학부모 공개수업에서 선생님이 얼마나 긴장하고 떠는지 아는 학부모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물론 선생님을 보러 오는 게 아니라 아이를 보러 오는 거니까 선생님에게 관심이 전혀 없을지도 모르겠다. 아무도 나에게 관심이 없는데, 그래도 수업을 잘해보고 싶은 마음.
학부모 공개수업날에는 어린이들도 긴장한다. 평소와 다른 어린이들의 모습을 보면 귀엽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하다. 엄마들이 다 오셨는데 딱 2명의 어린이만 아무도 안 왔던 어느 해의 학부모 공개수업날에는 수업이 끝나고 아이들이 모두 엄마 아빠에게 달려가 있는 동안 그 아이들이 안쓰러워 손을 꼭 잡아주었다.
"우리 땡땡이랑 쑝쑝이는 잘하니까 엄마가 안 보셔도 오늘 수업 너무 잘했어. 엄마가 바쁘셔도 이렇게 잘하고 있다고 집에 가서 꼭 말씀드려."하고 말해줬지만 다들 엄마랑 대화하는 그 짧은 5분의 시간 동안 그 아이들이 얼마나 서운하고 속상하고 뻘쭘했을지 느껴졌다.
사실 공개수업이 끝나고 부모님들이 돌아가시기 전까지의 짧은 쉬는 시간의 뻘쭘함은 교사들도 마찬가지다. 자녀들에게 인사하고 칭찬하느라 바쁜 엄마들과 눈빛 하나 마주치지 못하고 나 혼자 누구와 인사해야 할지 몰라 두리번거리는 순간이라니.
선생님과 인사하고 돌아가시는 부모님은 몇 명 안된다.
첫째 아이의 수업 중간에 남편과 바통터치를 하고 나는 둘째 아이의 교실로 들어갔다. 여전히 장난꾸러기에 두리번거리기는 왜 그렇게 많이 하는지. 통 마음에 들지 않는 둘째 아이의 모습에 남은 수업시간 동안 내 표정은 여러 가지로 바뀌느라 정신이 없었다.
수업이 끝나고 아이들과 엄마들이 정신없이 인사하는 틈을 타, 홀로 외로이 칠판 앞에 서계시는 선생님께 아이의 손을 잡고 가서 인사를 드렸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나의 죄송하다는 인사말에 선생님은 이해한다는 듯이 "하하하"웃으셔서, 역시나 죄송할 일이 맞는구나를 실감하게 되었다.
남편은 1학년 선생님을 입학식 때 보고 처음 뵈었는데, 다른 분으로 바뀐 줄 알았다고 했다.
"엥? 선생님이 왜 바뀌어. 안 바뀌었는데."
"더 나이가 드신 분인 거 같은데, 입학식 때 선생님보다 늙어 보여."
"뭐? 푸하하하. 그래. 1학년 담임하면 한 십 년은 늙는다고!"
정말 1학년 담임하면서 선생님이 늙으신 걸까? 그럼 나는 이미 70대인가!
아이들 수업이 끝나고 우르르 몰려 나가는 학부모들 틈에서 대화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수업이 그렇게 재미없냐. 애들이 재미없다고 할 만하네."
"진짜 수업 졸리더라."
따위의 이야기를 제 딴에는 조용히 한다고 했을까. 내 귀에 꽂힌 대화소리에 나도 모르게 그들을 쳐다봤지만 누군지는 모르겠고, 뭐 내가 쳐다보는지도 모르고 그냥 지나쳐가는 학부모들을 보니 내 얼굴이 다 뜨거워졌다.
누구를 위한 학부모 공개수업일까.
학부모 공개수업에서는 선생님이 평소처럼 농담을 할 수도 없고 애들을 웃기는 이상한 행동을 하기도 어렵다. 조금 더 점잖게, 조금 더 경직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수업이 꼭 재미있어야 할까?
학습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즐겁게 수업을 하고나면 뭔가 재미는 있었지만 남는게 없는 날도 있다. 또한 어렵고 지루한 시간을 견뎌야 성장하기도 한다.
엄마가 발표하고 나니 아이에게 너도 열심히 발표하라고 말 할 수 있어서 좋다.
아이가 까불어서 선생님께 죄송하다고 말할 수 밖에 없지만 인사한마디 더 하고 올 수 있어서 어쩌면 다행인지도 모르겠다.
학부모지만 교사이기에 수업을 평가할 수가 없다. 물론 학부모 공개수업이 평가하는 자리도 아니고 말이다. 우리 아이의 성장하는 모습을 보고 격려해주는 시간을 위해 모두가 노력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그러면 1학년 담임이어도 10년까지는 아니고 5년정도만 늙을 지도 모르겠다.
학부모로 참여한 학부모 공개수업은 첫째아이 교실에서도, 둘째아이 교실에서도 부끄러웠다. 결국 나의 마음가짐의 문제겠지. 발표한게 죄는 아니고, 아이가 까부는게 내 잘못은 아니잖아?(내 잘못인가?큼큼.)
복직하면 내 자식들 수업은 참여할 수 없을지도 모르는 교사맘은 오늘만큼은 휴직한 호사를 누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