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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심좌의 뻔뻔함

by 새벽책장

우리 집 작은 사람의 유치원 방학이 시작되었다.

하루종일 무엇을 해야 할지 계획 따위는 없다. 나는 내 시간이 소중하니까. 아이는 아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된다.

그래도 꼭 해야 하는 일 중의 하나는 3주에 한 번씩 도서관에 가서 책을 대출해 오는 것이다.


-주니야 엄마랑 도서관 가서 책 빌려올까?

-아니.

-그럼 엄마 혼자 다녀와도 될까? 한 시간만 혼자 있을 수 있지?

-안돼.

-....... 도서관 반납 안 하면 연체되는데, 오늘까지 가야 해. 같이 가서 책 빌려오자.

-싫어.

이런, 집돌이 녀석 같으니라고.


집돌이 덕분에 2주 동안 밖에 나가지 못했고, 그렇게 해서 나는 불량 연체자가 되었다. 그 사실이 나를 안절부절못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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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 곳의 도서관을 다니고 있다. 각 도서관에서 20권씩 총 60권을 빌려온다.

아이의 방학과 함께 60권의 책이 전부 연체가 되었고, 도서관에서 독촉 카톡이 오기 시작한다.

-아 왜 이렇게 자주 카톡을 보내고 그러시나. 조만간 반납할 거라고요.

연체자는 뻔뻔하게도 독촉 카톡에게 화가 난다. 누가 잘못한 건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드디어 아이의 방학이 끝나고 세 군데의 도서관을 순회한다.

-이거 반납하기 엄청 눈치 보이네, 괜찮아 괜찮아. 나만 연체되는 거 아니야.

뻔뻔함으로 무장하고 당당한 척 고개를 치켜든다.

"반납할게요."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말하지만, 사서님은 친절하게 웃으며 반납처리를 해주신다.

"반납완료 되셨어요. 연체되셔서 1월 18일부터 대출가능하십니다."

아, 압니다. 안다고요. 그렇게 큰 소리로 말할 거 없지 않습니까, 생각하고 재빠르게 도망 나온다.


-내가 당연히 알지. 뭐 그렇게 쩌렁쩌렁하게 말할 필요 있나. 창피하게.

연체자는 뻔뻔스럽게도 당당하다.


무엇인가 뻔뻔함이 나에게서 뿜어져 나오고 있다는 사실에서 안도감이 느껴진다. 나에게 이런 여유가 느껴질 수 있다는 게, 그렇게도 가지고 싶었던 뻔뻔함이 불혹의 나이에 드디어 나타난 것이 반갑다.





나는 매우 '소심좌'이며 규칙에 약간의 강박이 있다. 게다가 불안도가 높은 편이다. 학창 시절 수업시간에 발표시킬까 봐 심장이 쪼였던 것은 예사고, 심지어는 버스에서 내리려고 하차벨을 누를 때조차도 심박수가 올라간다. 혹시 아저씨가 정류장에 안 세워줄까 봐, 눈치를 보고 벨을 언제 눌러야 아저씨가 잘 내려줄지 고민한다.

출근할 때도 내가 제일 먼저 가지 않으면 견디기 어렵다. 미혼일 때는 항상 일찍 와서 문을 열어 놓고 아이들을 기다렸는데, 내 자식을 등원시키고 가야 하는 애엄마가 되고 나서는 8시 40분에 딱 맞춰 가기도 벅차다. 그럴 때에는 심장이 터질 것처럼 쿵쾅대고 하루가 벌써 엉망이 된 기분이 든다.


아이를 키우면서는 나의 조급함과 소심함이 아이들에게 투영되어 괴로웠다.

그래서 이제는 조금 호방해지고 싶다. 이제 세상 어떤 일에도 혹하지 않는다는 불혹이지 않은가.

연체는 잘못한 게 맞지만 그렇게까지 주눅 들 필요는 없다. 재빠르게 잘못을 인정하고 되도록이면 규칙을 어기지 않으면 된다. 살다 보면 내 뜻대로 안 되는 일이 많다.


내가 스스로에게 여유를 주는 것의 이유는 타인이다. 나도 잘못하고 실수할 때가 있기 때문에 타인의 실수에 관대하고 싶다. 마치 어렸을 때 공부를 무척 잘하지는 않았던 내가 교사가 되어서 느린 학습자들을 잘 이해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 타인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내 자식이다. 나와 너무도 다른 성향의 아이 덕분에 많은 육아서를 읽었지만 결론은 아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의 강박과 불안감을 이용해서 지금 행복한 아이를 닦달하면 좋아질 일이 하나도 없다.



어렸을 때 엄마는 나를 이상한 애라는 말로 치부해 버릴 때가 많았다. 사춘기 어느 시절, 엄마에게 소리를 지르던 장면이 가끔 떠오른다. 나를 좀 인정해 달라고 악다구니를 쓰던 14살의 나는 이제야서야 원래 이런 사람이라고,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은 다 다른 법이라고, 나와 같은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잘못된 게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에게 알려주기 위해 애쓰고 있다.


내 아이, 교실의 아이 모두에게 호방한 어른이 되고 싶다.

"그럴 수도 있지"라고 말만 하는 것이 아닌, 눈빛으로도 말하는 어른이 되고 싶다.

조금은 뻔뻔한, 호방한 할머니가 될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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