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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책장 Feb 19. 2023

집 앞에 꽃바구니가 있었다

그날따라 이호가 늦잠을 잤다.

아침밥을 먹고 싶어 하지도 않고 옷도 입지 않으려 했다. 입만 뾰로통하게 내밀고 뭉그적거리는 아이를 보며, 어쩔 수 없는 마음으로 유치원 버스 선생님께 오늘 버스를 타지 못한다고 문자를 보냈다.

이 녀석, 일부러 그런 것처럼 갑자기 얼굴에 화색이 돈다. 밥을 먹고 옷을 입더니 짱구춤을 씰룩씰룩 춘다.

어이가 없으면서 귀엽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챙기고 나가야 하는 안쓰러움도 느껴진다.

재작년에는 일 년 내내 엄마가 출근길에 아이를 던지다시피 내려놓았다. 아이는 항상 유치원에 1등이나 2등으로 등원을 했고, 한 번도 유치원에 안 간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작년에는 엄마가 집에 있는 걸 아는 이 녀석은 유치원에 자주 가기 싫어하고 자주 지각을 한다. 역시 인간은 누울 자리를 보고 발을 뻗는 법이다.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돌아오는 길에 큰 아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엄마 공동현관에서 누가 벨을 눌렀어."

"택배아저씨 거나 전단지 붙이러 온 사람일 거야. 그냥 무시해도 돼."

"무서워. 또 눌렀어."

"괜찮아. 열어주지 마."

아이와 통화를 끝내자마자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어디야?"

"응, 이호 유치원 가기 싫어해서 차로 데려다주고 집에 가는 길이야."

"그래? 알았어."

"왜?"

"그냥. 조심히 들어가."

싱거운 전화를 받고 요즘 일이 없다더니 심심한가 싶었다.   


       

집 앞에 도착하자 남편이 왜 싱거운 전화를 걸었는지 알게 되었다.

집 앞에는 꽃바구니가 놓여있었다.



결혼 십 주년이라고 남편이 꽃바구니를 배달해 주었다. 글씨체가 남편 같아서 직접 썼는 줄 알고 감동이 3배 되려다가 꽃집 사장님의 대필임을 알고 감동은 2배만 받았다.




십 주년에는 해외여행을 가자고 말했던 때가 십 년 전이었다. 십 년이 왜 이렇게 빨리 지나가는 건지.

정말 시간이라는 놈은 제 나이만큼의 속력으로 달리는 것이 맞나 보다. 앞으로는 더 빨리 흘러갈 텐데, 갑자기 조급한 마음과 함께 걱정스러웠다.

좀 천천히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오랜만에 들었다. 힘에 부치는 날에는 시간이 빨리 흘러서 아이들이 어서어서 독립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십 년 동안 나만 고생한 건 아니다. 욕심 많은 큰아이와 소심한 둘째 아이. 두 친구 모두 일하는 엄마 덕분에 꽤 힘들었다. 남편도 뭐 주말마다 먼 길 달리느라 나름대로 고생했다. (그래도 주중에 늴리리 맘보인 건 개부럽)     



꽃바구니는 생전 처음 받아봐서 기분이 참 몽글몽글해졌다. 마흔인데도 처음 해보는 것들이 많다. 계속 처음 해보는 것들이 많은 삶을 살고 싶어졌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를 그렇게 위로하며 살면 된다는 굉장히 낙천적인 생각마저 든다.

유치원 버스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아이 마음 편하게 내가 조금 귀찮으면 된다.

남편의 꽃바구니는 또 오랫동안 마음의 양식이 될 터이니, 힘이 솟는다.


그렇게 위로하고, 위로받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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