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서쪽으로 난 부엌 창은 조금만 열어도 바람이 쌩쌩 불어 단 몇 초도 안 돼서 닫아야 할 지경이다. 서쪽으로는 앞이 탁 트여서 바람이 바로 불어 들어온다.
오늘도 발행할 수 없는 글을 썼다. 새벽에 일어나서 그런 글을 한 바가지 쓰고 나면 어떤 날은 손이 덜덜 떨린다. 너무 심하게 썼나, 싶어서. 아무도 못 볼 테지만, 혹시 누가 볼까 봐 걱정이 되는 글은 치유의 글쓰기라는 이름이지만 치유가 되고 있는지 의문이다.
걱정이 되면서도 그런 글을 쓰는 이유는 글로써 응어리를 풀어내지 않으면 가슴의 돌덩어리가 그대로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떤 글도 쓸 수가 없다.
응어리 진 글들은 언제쯤이면 온화해질까 고민되는 날이다. 글로 토악질을 해댔는데 기분이 더 나빠지는 이런 날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울고 싶다.
내 마음도 동쪽 창과 서쪽 창으로 나뉘어 있나 보다. 햇살이 들어오는 마음과 찬기가 쌩쌩 도는 마음인데 어느 날 어느 쪽 창문이 열릴지 알 수 없으니 말이다.
햇살이 들어오는 창문만 열어놓아서는 쉽사리 환기가 되지 않는다. 서쪽 창도 열어놓으면 몇 분 이내에 집 안 공기가 썰렁해지면서 집 안에 바람냄새가 가득 들어찬다. 그때서야 만족감이 차오른다. 추워서 몸을 덜덜 떨면서도 환기를 하는 이유다.
그런데, 슬픈 건 창을 닫으면 또다시 집 안 공기는 눅눅해진다는 점이다.
정말 내 마음과 똑 닮은 환기타임이 아닐 수 없다. 어차피 환기시켜도 다시 냄새가 벨 집을 생각한다면 효율성 없이 환기를 시킬 필요 없지 않느냐고, 스스로에게 반문하기도 한다. 그러나 어디 그럴 수 있나. 바깥공기가 미세먼지 최악인 날도 환기는 꼭 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이 그랬다. 그 말을 했던 사람은 무슨 전문가였지. 세상에는 전문가가 참 많다. 그들은 자신의 마음도 환기를 잘 시킬까. 공기전문가들은 마음전문가에게 상담을 받는다. 마음전문가들은 또 다른 마음전문가들에게 상담을 받는다. 서로서로 상담을 받는다. 마치 서로 핥아주는 동물 같다. 결국 우리는 사람의 온기에 기대어 살 수밖에 없는 동물이다.
내 마음속 창문도 온기를 실은 바람으로 활짝 열릴 것이다.
결국 지겹도록 뜨끈하고 끈적한 바람 때문에 창문을 꼭꼭 닫아 거는 여름이 와도 찬바람이 쌩쌩 부는 이 계절보다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막상 그 계절이 오면 다시 오늘을 그리워한다는 걸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우리가 봄을 기다리는 이유는 겨울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봄을 기다린다. 그리고 봄바람 냄새가 가끔씩 불어오는 요즘은 희망도 생긴다. 또 봄이 오니까.
봄을 실어 나르는 사람과 사귀고 싶다.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